ADVERTISEMENT

"대지진 대비 불충분" 日법원, 원전허가 취소 판결...후쿠시마 사고 후 처음

중앙일보

입력

일본 법원이 지진 대비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간사이(關西) 전력의 오이(大飯) 원전 3·4호기에 대해 설치 허가 취소 판결을 내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정부의 원전 허가를 취소하는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사카 법원, 오이 원전 3·4호기 허가 취소 판결 #"예상 못한 규모 지진에 대응할 내진성 못 갖춰" #원전 가동 재개 추진 日 정부 움직임에 '찬물'

간사이(關西) 전력이 운영하는 오이(大飯) 원자력 발전소. [교도=연합뉴스]

간사이(關西) 전력이 운영하는 오이(大飯) 원자력 발전소. [교도=연합뉴스]

5일 아사히·마이니치 신문 등에 따르면 오사카(大阪) 지방재판소(법원)는 전날 간사이 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이(福井)현의 오이 원전 3호기와 4호기 설치를 허가한 정부의 결정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1990년대 초 만들어진 오이 원전 3·4호기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됐다가 2012년 7월부터 가동을 재개했다. 2014년 후쿠이 지방법원이 안전을 이유로 운전 금지 판결을 내리면서 4년 넘게 다시 정지됐으나 2017년 5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엄격해진 새 규제 기준에 따른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심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으면서 재가동됐다.

하지만 후쿠이현과 인근 지역 주민 127명은 오이 원전 3·4호기가 대지진에 대한 내진성(耐震性)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며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예상 못 한 규모의 지진 대비 불충분"

이번 판결의 핵심은 원전이 예상치 못한 규모의 지진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내진성을 갖췄는가였다.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전이 위치한 지역에서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의 면적과 길이 등을 계산해 최대 진동 규모인 '기준 지진동'(地震動)을 산출하고, 이에 맞춰 내진 설계를 할 것을 전력회사에 요구했다.

오이 원전은 2017년 심사에서 계산으로 도출된 최고 규모의 진동보다 1.2배 더 큰 규모의 진동에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당시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판단이 예상을 뛰어넘는 큰 지진이 올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봤다. 법원은 "판단 기준에 간과할 수 없는 과오와 누락이 있어 허가를 위법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26일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폐로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26일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폐로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오이 원전 3·4호기는 각각 올해 7월과 11월 정기 검사를 위해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설치 허가 취소를 요청하는 주민 측의 승소가 확정되면,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재심사를 통과해 다시 허가를 받을 때까지 가동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원전도 비슷한 기준…재가동 정책 타격

이번 판결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새로운 규제 기준 하에서의 원전 재가동'을 추진해온 아베·스가 정부의 정책 방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아사히는 전망했다. 새 기준 하에서 허가를 받은 전국의 다른 원전들도 오이 원전과 비슷한 기준의 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아사히에 따르면 일본 내 총 36기(건설 중 포함) 원전 가운데 현재까지 규제위원회의 새 기준을 통과해 가동 허가를 받은 곳은 16기다. 하지만 실제로 재가동을 시작한 곳은 5개 원전의 9기뿐이다. 나머지는 가동에 앞서 주민의 동의를 얻는 절차 등이 진행 중이다.

간사이 전력은 이번 판결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며 "정부와 협의 후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항소를 검토 중이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