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음치 신경과학으로 고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직장인 P씨(48)는 노래방 간판만 보면 겁부터 난다. 마이크를 잡으면 남들이 비웃고 박자도 못 맞춘다.

노래 연습을 해봐도 도대체 어디가 틀리는지 알 수가 없다. '음치 클리닉'을 노크해보기도 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한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노래 공화국'이다. 오죽했으면 몇 해전 독일의 시사주간지 '포쿠스'가 한국에선 음치를 탈모나 발기부전처럼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보도했을까.

비즈니스나 출세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음치. 여기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을까.

미국 LA 근교에 있는 이음향방사(耳音響放射)연구센터 곽상엽(35.UCLA 인지음향연구소 책임연구원)원장은 24일 신경과학적인 음치 치료 방법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귀의 이음향방사 미세 구조가 음악에서 사용하는 평균율(平均律) 반음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한 데 이어 가청 주파수 반응으로 음치 지수를 계산하는 측정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우선 음높이 차이를 인식해내는 DLP 지수(청각신경세포의 주파수 해상도)를 측정해 음치 여부를 판단한다. 그후 특정 주파수의 정현파(定弦波), 즉 싸인파(sine wave)를 일정 기간 들려줘 청(聽)세포를 복구하면 굳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서도 음치를 쉽게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치료법은 미국 LA에서 20개월간의 임상 시험을 거쳤다. 이어 지난해 7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국제음악인지학회에서 처음 공개한 후 실용화를 앞두고 있다.

◇음치의 원인=음치는 구강 기형, 언어장애, 정신장애, 자폐증 때문에 노래 부르기를 꺼려하는 운동성 음치와 청각 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감각성 음치가 있는데 대부분이 후자다.

달팽이관 안에는 소리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3천여개의 내유모 세포와 음량에 반응하는 1만5천여개의 외유모 세포가 있다. 이들 세포의 배열이 비정상적이거나 혈류 기능 장애로 주파수 해상도가 낮아지면 음치가 발생한다.

미세한 음정(반음)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달팽이관의 이상, '도'를 '솔'또는 한 옥타브 위의 '도'로 인식하는 것은 배음(倍音.overtones)을 듣고 기본음을 추출해 내는 대뇌 신경망 조직인 배음판(harmonic template) 기능의 상실 때문이다.

달팽이관의 선천적인 기형으로 인한 음치는 언어 장애나 난청까지 동반한다. 특정 주파수 대역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기능성 난청도 있다.

언어 습득기인 5세 이전에 부모의 음성이 지나치게 시끄럽고 허스키한 경우나 소음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랄 경우 본인도 허스키한 목소리에다 음치가 될 확률이 높다. 반대로 지나치게 조용한 환경에서 자라면 음치가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

◇음치 치료법=청각 신경세포 단위의 비정상적 반응을 사인파의 물리적인 순음(純音.pure tone. 가령 알람 시계나 라디오 시보 같은 소리)으로 자극하는게 곽씨팀이 개발한 음치 치료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개발팀은 헤드폰형 디지틀 장비로 들려주는 다양한 순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헤드폰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순음을 계속 듣는 치료를 받으면 주파수 공명반응과 세포 이온반응으로 청각 세포의 기능과 감수성이 최고 30㏈까지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신경과학의 연구성과로 개발한 청력 자동복구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잠자고있는 청각세포를 깨우면서 비정상적으로 꼬여 있는 청각신경계의 매듭을 풀어준다는 얘기다.

◇음치 검사법=청각신호 탐지 미세 기능 파악을 위한 검사, 환자의 목소리로 제시음을 추적하는 검사, 귀 음향방사 검사 등으로 외유모 세포의 기능 이상을 확인한다. 여기에 청신경 검사를 병행해 최종적으로 DLP 지수를 결정한다.

DLP 지수가 낮을수록 음감이 좋은 사람이다. 정상인은 1~2% 포인트 이내, 음치 질환자는 5~40% 포인트로 나타난다. 음치는 주파수의 5~40%가 바뀌어야 음높이 차이를 느낀다는 얘기다.

◇이음향방사(OAE.Otoacoustic Emissions)=달팽이관 안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생체 음향 에너지. 1978년 영국 생리학자 DT 켐프가 처음 발견했다. 0.5㎜ 간격으로 최대 에너지를 발생하면서 움직이는 음악적 자율진동이다. OAE 미세 구조의 스펙트럼과 대뇌의 전기적 반응을 정밀 분석해 청력 상태와 음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