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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감염자 이젠 끌어안자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대전에서는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와 관련해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성관계 후 여성이 장난삼아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며 겁을 주자, 격분한 남성이 여성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에이즈에 대한 심리적인 공포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가늠케 해준다.

우리는 아직도 '에이즈'하면, 동성애자가 퍼뜨리는 '20세기 천형', 혹은 '걸리면 끔찍하게 죽어가는 불치병'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에이즈가 처음 세상에 알려질 무렵 만들어진 이 고정관념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며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우선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이 퍼뜨리는 질병이 아니다. 항문 성교를 하면 쉽게 상처가 나서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

남자 동성애자의 경우 항문 성교를 하는 경우가 많아 HIV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을 뿐이지, 동성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발생하는 질병은 아니다. 또 에이즈는 전적으로 성관계나 수혈에 의해서만 전염되는 질병이다.

웬만한 신체접촉으로는 쉽게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HIV 감염자와 한 집에 산다거나 함께 직장생활을 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게다가 감염인과 단 한 번의 성관계로 HIV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0.5% 정도에 불과하다. 성기에 상처가 있으면 확률이 다소 높아지겠지만, 콘돔을 사용하면 확률은 훨씬 더 떨어진다.

그리고 최근 치료제가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8~10년 이상 발병하지 않으며, 발병하더라도 만성질환처럼 꾸준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농구 선수 매직 존슨처럼 거의 완치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에이즈는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인 것이다.

그렇다면 에이즈에 대한 심리적 공포와 그릇된 편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배경은 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 시절 동성애자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했던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을 보수적인 사회교육을 담당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가족'에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을 위험한 질병을 옮기는 병원체로 간주하고, 에이즈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동성애자들이 받는 천형으로 여기도록 설파했다.

여기에는 에이즈에 대한 이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은 정부의 태만도 한 몫을 했다.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이 날은 우리 사회가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나 에이즈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감염자들이 정상적인 치료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촉구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84년 자신이 에이즈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동안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감시와 처벌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던 근대 권력에 맞서 싸웠다.

이제 에이즈 환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 그리고 사회적 편견과 맞써 싸워야 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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