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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졌지만 트럼프주의는 남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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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호 20면

미국은 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는가

미국은 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는가

미국은 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는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 지음
홍지수 옮김
김앤김북스

트럼프 지지 성향 교수의 분석 #4년 전보다 936만 표 더 얻어 #중부 내륙 백인 근로자가 관건 #바이든, 이들 마음 되찾아 당선

사실 『미국은 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는가(The Case for Trump)』 한국어판은 적절치 못한 시점에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공식 발간일이기도 한 지난 3일 치러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선택받지 못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판은 2020 대선 후보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2019년 3월 출간됐다. 아마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지지자 결집용으로 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지은이 빅터 데이비스 핸슨(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은 열렬한 트럼프주의(Trumpism) 지지자이긴 하지만 트럼프는 물론 그의 측근들조차 한 번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고 한다.

비록 트럼프가 낙선하긴 했지만 이 책의 가치는 여전히 작지 않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드라마틱한 올해 미 대선을 흥미롭게 지켜본 많은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은 현재 미국 정치의 지형도를 그 어떤 텍스트보다 더 실감 나게 잘 보여 준다. 트럼프 쪽 시각에서만 봤다는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패하긴 했지만 총 7235만표(11월 12일 현재)를 득표해 4년 전보다 무려 936만표 이상이나 얻었다. 공화당도 상원 의석 절반을 지키고(남은 2석은 결선투표) 하원에서도 의석을 불리는 데 성공해 트럼피즘의 영향은 아직도 상당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대선이 끝났어도 미국 사회의 분열상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선 탈취 반대 집회에 총기를 든 채 참가한 트럼프 지지자. [AFP=연합뉴스]

대선이 끝났어도 미국 사회의 분열상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선 탈취 반대 집회에 총기를 든 채 참가한 트럼프 지지자. [AFP=연합뉴스]

이 책은 ‘굴러들어온 돌’인 트럼프가 2015년 6월 16일 공화당 후보 출사표를 던졌을 때부터 2016년 대선 당선 이후 지난해까지의 대통령 재임 기간 정책 성과를 기술하고 있다.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어떻게 해서 쟁쟁한 공화당 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선 후보 지명을 받게 됐는지, 나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을 차지하게 됐는지를 낱낱이 파헤쳤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공화당 내부 일각에서조차 ‘트럼프 절대 불가(Never Trump)’를 외치는 열악한 상황을 뚫고 보란 듯이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마법 같은 주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라는 이단아가 현대 미국 정계를 지각변동시켜 놓은 선거 과정을 복기해 봄으로써 향후 바이든 시대를 예측해 볼 수도 있다.

저자는 ‘트럼프 현상’을 당장의 승패를 떠나 미국에 곧 닥칠 어마어마한 변화의 전조로 본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쌓여 왔던 미국의 분열과 갈등,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독한 ‘화학요법’ 치료사로 묘사된다. 핸슨 박사는 주류 언론과 양쪽 해안(민주당 우세 지역) 엘리트 계층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자기중심적이고 허풍이 심하며 때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거칠면서도 천박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겉모습 이면에는 자신이 내뱉는 독설의 정치적인 효과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증오의 융단폭격을 퍼부은 힐러리와 미국 엘리트 사회가 오히려 트럼프에 보기 좋게 당했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트럼프는 쇠락하고 있는 미국, 특히 세계화에 따른 산업공동화로 소외되고 위기에 처한 중부 내륙 백인 산업근로자 계층의 절박한 처지와 고충을 보듬고 그들을 위한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언사와 공약으로 이들의 지지를 투표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수많은 사례를 들며 트럼프의 정치문법과 ‘거래의 기술’, 한편으로는 어설퍼 보이면서도 핀포인트로 지지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책들의 면면을 잘 보여 준다.

올해 2020년 미 대선에선 어쨌든 바이든이 승리했다. 트럼프가 차지했던 중부 내륙 백인 산업근로자 계층의 지지를 어느 정도 되찾아 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바이든은 한때 이들을 “사회의 쓰레기”라고 폄하한 적이 있다. 그가 이 책을 접하고 반면교사로 삼은 것일까. 바이든은 트럼프의 성공 비결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리고 만회에 안간힘을 써 결국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주에서 승리해 대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아니면 트럼프의 품위 없는 언행과 밉살스러운 성격, 과도한 미국 우선주의가 자업자득이 돼 그의 장점을 갉아먹은 버린 결과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선 또 딥스테이트(Deep State)라 불리는 미국 ‘터줏대감 관료조직’의 실태에 관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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