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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소리도 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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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 ‘소리도 없이’는 테마나 캐릭터 같은 서사적 요소만큼, 영화가 지닌 독특한 톤이 인상적인 영화다.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은 범죄의 뒤치다꺼리를 한다. 이때 그들에게 임무 하나가 떨어진다. 유괴된 아이 초희(문승아)를, 돈을 받을 때까지 맡아 달라는 것. 초희는 태인의 집에 있게 되는데, 일은 꼬여만 간다.

평범한 드라마처럼 시작한 영화는 갑자기 유혈 낭자한 범죄 현장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유괴의 모티브가 결합되는데, 그러면서도 ‘소리도 없이’는 장르적 관습으로 달려가지 않고 시종일관 일상의 톤을 유지하며 때론 싱거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름달 뜬 밤 갈대밭 장면’처럼 서정적인 롱 숏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도망치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초희와, 아이를 찾아 헤매는 태인. 두 사람은 갈대밭에서 조우한다. 태인은 뭔가 삐진 듯 서 있고, 초희는 그런 태인을 끌어당기며 이끈다. 어른과 아이가 역전된 관계이며,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향한다.

영화 ‘소리도 없이’

영화 ‘소리도 없이’

서사가 느슨한 편인 이 영화에서 굳이 클라이맥스를 찾는다면 이 대목일 것이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가장 격렬한 감정을 전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의 비정한 현실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는, 태인과 초희의 관계를 통해 그나마 인간적인 희망의 뉘앙스를 전한다. 물론 희망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고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