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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간 대장장이 김예섭씨 "열심히 일하고 현재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아요"

중앙일보

입력

"솔직히 말해 젊어선 기술을 배워 잘 살아보려고 열심히 했고, 중년엔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던 일을 놓으면 곧 쓰러질 것 같고, 나를 알아주는 손님들이 고마워 그 맛에 열심히 하는 겁니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던 21일 오후 찾아간 곳은 수색로변에 자리잡은 서울 남가좌1동 모래내대장간-.

바닥과 사방벽은 물론 심지어 천장까지 온통 쇠붙이들로 도배질 친 가운데 화덕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멋모르고 찾아든 방문객을 시험이라도 하듯 한껏 달아오른 제 열기를 사정없이 쏟아낸다.

가뜩이나 복더위에 꼼짝않고 있어도 등판에 땀개울이 생기는 판에 이놈의 고약한 인사치레까지 받으려니 죽을 맛(문자 쓰자면 伏上可火라고나 할까)이건만 주인장 김예섭(金禮燮·59)씨는 아랑곳없이 시뻘건 쇠불덩이를 연신 두드려댄다.

대장장이의 `위대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듯한 그의 망치질 끝에 모루 위에선 온갖 것들이 새 얼굴로 피어난다.

불과 쇠를 맘대로 다루는 장인(匠人)-, 미다스의 손이 따로 없다.

김씨가 이렇게 빚어내는 물건의 종류는 어림잡아 2백가지가 넘는다.가정용 식칼에서부터 공장기계부품까지 분야가 따로 없다. 칼만 해도 닭잡는 것과 소잡는 것이 다르듯 같은 종류라 해도 쓰임새까지 따져 나누면 5백가지도 더 된다. 심지어 무당들이 굿할 때 쓰는 각종 무구(巫具)와 철기시대 유물의 복제까지 주문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어낸다.

김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열여덟살 때 고향인 전남 광양군 옥룡면에서부터. 농부의 5형제 아들 중 넷째로 태어났지만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읍내(실은 면사무소근처)대장간앞을 지나칠 때마다 달궈진 쇠를 두드려 낫이며 호미 등을 만들어내는 게 신기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쪼그리고 앉아 구경을 하곤 했던 터. 약골로 생긴 아들이 안쓰러웠던지 아버지의 만류는 계속되었지만 기술을 배우겠노라 무작정 대장간을 찾아가 풀무를 잡았다.

3년 전 서울대박물관에 고구려시대의 투구·칼·도끼·낫 등 10여가지를 만들어 납품하기도 하고, 올 봄엔 월드컵기간 전시용 고대 일본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방송 사극용 각종 용품 제작의뢰도 많이 들어와 `허준`의 경우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쇠붙이가 그의 손을 거쳤을 정도다.

하지만, 그동안 하도 고생을 한 탓에 4년 전부터는 건강을 생각해 하루 30여만원어치 정도만 일을 한다. 그래도 그의 작업시간은 요즘도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꼬박 열두시간이다. 이제는 꼭 돈벌이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기술을 알아주는 고객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가짐이다. 돈도 쓸만큼 벌어놨지만 여태껏 변변하게 놀러가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하던 일을 놓으면 곧 쓰러질 것 같고, 나를 알아주는 손님들이 고마워 그 맛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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