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파트를 한 번이라도 판 사람은 ‘루저’잖아요. (값이) 계속 오르니까. 근데 여러 집을 모험해보니 집마다 각각의 즐거움이 있어요. 아파트에만 살았으면 억울할 뻔했죠.”
2005년 결혼해 15년간 자가‧전세를 오가며 여섯 번 이사 끝에 지난해 서울 서촌에 자신의 첫 집을 지은 정성갑(44)씨의 말이다. 잡지사에서 20년 가까이 에디터‧편집장을 거치며 여러 건축가를 인터뷰해온 그는 내게 꼭 맞는 집을 찾으려 아파트‧빌라‧한옥으로 “2년에 한 번 짐 싸면서 다이내믹한 세월”을 보낸 경험을 지난달 에세이집 『집을 쫓는 모험』(브레드)으로 펴냈다.
3일 그를 그의 서촌 집에서 만났다. 59.5㎡(18평) 작은 땅에 좁고 높게 지은 협소주택이다. 꼭대기인 3층 부엌 창문 너머로 배화여대의 300년 된 회화나무가 액자 그림처럼 내다보였다. 흐르는 구름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살 속에 단풍 낙엽이 비처럼 흩날렸다. “모든 단독주택은 멋진 풍경이 최소 두 군데는 나오는 것 같아요.” 이를 그는 “나만의 풍경”이라 표현했다.
신혼집부터 15년간 6번 이사다닌 정성갑씨 #서촌 집 짓고 쓴 에세이집 『집을 쫓는 모험』 #아파트값 손해 본 화병, 집 모험으로 전화위복 #"아파트에만 살았으면 억울할 뻔했죠"
아파트값 손해보고 화병 나기도
그런 정씨도 아파트값을 손해 봤다는 생각에 화병에 시달린 시기가 있었다. 신혼집이던 길음뉴타운의 첫 아파트를 팔아 1억원이란 큰돈을 처음 벌어보곤 2010년 인근의 두 번째 아파트 분양권을 3억6000만원에 무리해서 샀었다. 아파트 생활이 갑갑해 새 아파트를 세 놓고 서촌 한옥에서 전세살이를 하다 2014년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아파트 시세 정체기였다. 산다는 사람이 하도 없어 수천만 원 손해를 보고 팔았단다. 불과 몇 개월 후인 2015년부터 치솟기 시작한 아파트값은 지난해 10억원에 육박했다. 자칭 “아파트를 잘못 팔아 6억 넘게 잃은 눈물 나는 세월”이다.
“크게 한 방 맞고 나니 깨끗이 단념하게 되더군요.” 한때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잠도 못 잤던 그의 마음을 달래준 게 바로 집을 옮겨다닌 모험이다. 전남 무안의 마당 넓은 시골집에서 살던 유년시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 그와, 신혼집부터 옥탑방에 차리자던 모험심 강한 아내는 이사하는 집마다 “마디마디 충실하게 예쁘게 해놓고 살았다”고 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2학년인 두 딸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이사의 여정을 놀이처럼 동참했다.
달 보고 제비 똥 치우는 한옥살이 또 꿈꿔
그가 집에 더 애착을 갖게 된 건 두 번의 한옥살이 경험 덕분이다. “마당에서 달 보고, 제비 똥 치우며 이야기가 쌓였죠. 아파트가 밀폐된 구조라 답답하다면, 한옥은 툇마루에 누워서 구름만 봐도 맑은 샘물이 채워지는 상쾌한 느낌이에요.” 그 순간들이 그리워 요즘은 한옥 짓는 꿈을 꾼다면서다.
아파트 유일한 답 아니죠, 모험 나서길
지난해 집을 지으면서 그에게는 또 다른 변화도 생겼다. 평생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콘텐트 제작 기획사를 차렸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하우스 토크’ ‘건축가의 집’ 등 집에 관한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번 책엔 협소주택 건축에 들어간 6억원의 내역에 더해 “집 지을 땐 전체 예산의 20% 정도를 여유 경비로 꼭 마련해두라” 등의 조언, 다양한 건축가 소개 등 집짓기에 관한 세세한 가이드도 담았다.
“요즘은 아파트를 유일한 답처럼 생각하잖아요. 많이 이사 다녀봐라, 집 짓는 것도 별 것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죠. 책을 읽은 분들이 다양한 집을 생각해보고 자기만의 집을 찾는 모험에 나서게 되면 좋겠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