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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원 vs 1조원' 주파수 재할당 비용 두고 정부-이통사 갈등 점입가경

중앙일보

입력

정부와 이동통신사업자 간 갈등이 점입가경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6월 사용 기한이 끝나는 3Gㆍ4G(LTE) 주파수(총 310㎒ 폭)에 대한 재사용료를 놓고 정부는 5조6000억원을 요구하는 데 비해 이통사는 1조 600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입장이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5조 5705억원을 반영하자, 이통사는 재경매 카드는 물론 “주파수를 덜 받겠다”는 ‘최후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통사는 정부가 과도한 재할당 대가를 요구할 경우 통신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주파수 대역을 좁힐 경우 서비스 품질 저하도 예상된다. 어느 경우든 소비자 피해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통3사 이미지. [중앙포토]

이통3사 이미지. [중앙포토]

정부, 5조6000억 포기하면 기금 운용 차질  

 내년도 과기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내년도 예산 중 주파수 재할당 대가 총액을 5조 5705억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이통사가 산정한 1조6000억원(5년 기준)과 크게 차이나는 액수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기부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의 80%,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의 75%의 재원이 재할당 대가 수입으로 충당된다. 이에 대해 조기열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은 “기금 수입의 감소 규모에 따라 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사업 집행의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통사로부터 5조60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정진기금과 방발기금을 활용하는 ICT 사업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의미다. 과기부가 이를 막기 위해선 기존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거나 국고(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차입을 해야한다. 과기부가 이통사로부터 받을 5조 6000억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2018년 5G 주파수 할당 신청서를 제출중인 이통3사 관계자. 연합뉴스.

2018년 5G 주파수 할당 신청서를 제출중인 이통3사 관계자. 연합뉴스.

이통사, "3년간 26조원 투자하는데 또 5조원" 

 하지만 이통사는 이미 정부의 ‘디지털 뉴딜’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5G 인프라 구축에 3년간 26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집행하기로 한 상태에서 또다시 5조원이 넘는 재할당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또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가 기존보다 낮아진 만큼 과거 경매낙찰가를 반영해 대가를 산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이통3사는 3일 정부 재할당 대가 산정방향에 대한 공동의견서를 내고, “대가 수준에 대한 정부와 사업자 간 입장차가 크다면, 기존 경매와 같이 관련 규정에 따라 경매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차라리 재경매를 통해 재할당 대가를 산정하겠다는 의미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이통 3사 CEO는 지난 7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통사가 5G 인프라에 2022년까지 26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뉴스1.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이통 3사 CEO는 지난 7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통사가 5G 인프라에 2022년까지 26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뉴스1.

이통사 최후의 카드, "대역폭 줄이겠다" 

 이통사는 정부가 5조6000억원에 달하는 현행 산정 방식을 강행할 경우, 최후의 카드로 주파수 대역폭을 축소하는 방안까지 강구 중이다. 정부가 물건(주파수 대역)의 단가를 낮춰주지 않겠다면, 물건을 덜 사는 방식으로 비용을 아끼겠다는 주장이다. 만약 이통사가 기존에 사용하던 3Gㆍ4G 대역폭을 줄이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선 서비스 품질 하락이 불가피하다. 복수의 이통사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주파수 대역을 덜 받는 방법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경우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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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 대가 산정 방식 개선돼야"  

재할당 대역폭.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재할당 대역폭.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먹구구식 산정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 전파법은 예상 매출액과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 산정하게 돼 있지만, 전파법 시행령에선 과거 경매 방식으로 할당된 적이 있는 경우 과거 낙찰 가격을 고려해 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이통사는 매출액 기준을, 과기부는 과거 낙찰 가격을 산정 기준으로 삼으며 대립하고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해석에 대한 정부의 재량권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재량권이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는 것은 재량권의 일탈과 남용이 될 수 있다”며 “3G·4G 주파수의 현재 경제적 가치에 대해 양측이 납득할만한 명확한 추산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국민의힘) 의원은 “주파수 재할당에 대한 명확한 대가산정 기준이 없어, 재할당 시기마다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며 “명확한 기준 마련을 통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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