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학생 줘야할 장학금, 자기 딸·조카에 몰아준 대학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전 건양대 교사. 연합뉴스

대전 건양대 교사. 연합뉴스

"가정형편이 어려운 딸의 후배들을 위해 써주세요."

건양대 졸업생 고(故) 이주현씨의 어머니는 2003년 이러한 말을 남기며 딸의 모교에 7000만원을 전달했다.

1995년 이 대학을 졸업한 이씨는 은행에서 일하다가 9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 돈은 이씨가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온 월급과 퇴직금, 결혼준비금에 그의 어머니가 보험금 등을 보탠 것이다.

대학은 '이주현 장학금'을 이씨의 후배인 경영대학 소속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급해왔다. 하지만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일하게 경영대학 소속이 아니면서 '이주현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있다. 이 대학 A교수의 조카였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양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A교수가 자신의 자녀와 조카에게 장학금을 몰아준 의혹이 있다고 3일 밝혔다.

A교수의 조카는 '이주현 장학금' 100만원과 함께 2016년부터 2018년까지 5차례에 걸쳐 교외장학금 700만원을 받았다. A교수의 딸은 이 대학에 다니던 2007년부터 2013년까지 9차례에 걸쳐 교외장학금 1000만원을 받았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받은 교외장학금은 A교수가 유치한 기금으로, 학생 추천 권한이 A교수에게 있다. 하지만 교외장학금과 이주현 장학금 모두 '가정형편이 곤란하나,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혜택을 받게 돼 있다.

윤 의원은 "장학금이 목적에 맞지 않게 지급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장학금 특혜 의혹은 소위 '부모 찬스'를 이용해 기회의 평등과 교육의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와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 하고, 학교도 공정한 학사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에 대해 건양대 관계자는 "규정을 어겨 장학금이 지급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장학금 제도에 공정성을 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