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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사표 논란 속…결국 대주주 기준 현행 10억 유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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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지금과 같은 10억원으로 계속 유지해 나가기로 정부가 결론 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글로벌 정세와 경제의 불확실성이 같이 높아지는 상황이어서 현행처럼 10억원을 유지하는 것으로 고위 당ㆍ정ㆍ청 협의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으로 유지하느냐, 3억원으로 낮추냐를 두고 수 개월여 지속했던 논란은 ‘동학개미’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로써 올해 연말 기준으로 특정 종목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만 내년 4월부터 이 종목을 매도해 수익을 내면 20∼30%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홍 부총리의 반대를 딛고 당ㆍ청이 동학개미의 손을 들어준 건 당장 3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대선 여파, 연말 증시 불안 가능성을 고려해서다. 정치적 이유도 있다. 내년 4월 있을 서울ㆍ부산시장 재보선이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여론이 악화할까 우려한 여당이 10억원 유지 안을 밀어붙였다. “기재부가 탁상공론식 사고에 머문 채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찍어누른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당이 더 강경하게 나갈 것”(2일)이라던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발언이 실현됐다.

‘찍어 눌림’을 당한 홍 부총리도 가만있진 않았다. 이날 기재위에서 “(대주주 기준과 관련해) 갑론을박이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것에 대해서 누군가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해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주주 3억원 안을 고수해온 홍 부총리를 겨냥해 ‘해임을 강력히 요청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었다. 청원 마감을 하루 앞둔 이날 동의 건수는 24만 건에 달했다. 이날 홍 부총리가 직접 사의 표명으로 국민청원에 응답한 격이 됐다.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기준 변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기준 변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현행 세법상 주식 양도세는 한 종목당 보유 액수가 10억원이 넘는 대주주에게만 부과된다. 2017년 기재부는 세제를 개편하면서 10억원인 대주주 금액 기준을 2021년부터 3억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2018년 2월 관련 시행령 개정도 마쳤다.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올 하반기 들어서다. 대주주 기준 변경 시기가 당장 내년으로 다가오자 올 들어 동학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졌다. 대주주 기준이 낮아지면 그만큼 주식 양도세를 내야 하는 인원, 대상 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주주 여부를 따질 때 본인은 물론 배우자, 직계존비속 소유 주식까지 합쳐 계산하는(가족 합산) 규정까지 불거지면서 ‘연좌제’ 비판까지 가세했다. 양도세를 피하려는 매도 행렬에 연말 증시가 조정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맞물려 동학개미의 분노는 계속 커졌다.

여론 불만이 비등하자 정부와 여당은 대주주 가족 합산 규정을 인별 계산으로 바꾸기로 결정(지난달 7일)했지만 개인투자자의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주주 3억원 변경 방침을 폐기하고 10억원으로 유지하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대주주 기준 개정 후 과세 대상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주주 기준 개정 후 과세 대상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결국 이날 경제부총리 사표 파동으로까지 이어진 논란 끝에 개인투자자들 바람대로 현행 대주주 10억원이 유지됐다. 하지만 안 좋은 선례는 또 남았다. 정부가 이미 확정한 사안을 여당이 정반대로 뒤집는 건 현 정부 들어 특히 잦다.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란 특수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추가경정예산, 1·2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에서 매번 부딪혔다. 이번 대주주 기준 논란의 경우 정부가 법령(시행령) 개정까지 마친 사안을 여론을 이유로 민주당이 뒤집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정치적 인기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오락가락하다 바뀌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정책 추진에 있어 가장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며 “여러 가지 경제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경제부총리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구도를 짜놓은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한편, 상속세 개편 논의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날 홍 부총리가 “극단적으로 부작용이 있다면 점검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반문하면서다. 삼성가(家) 상속과 관련해 최대 60% 이르는 상속세율이 논란이 된 데 대한 발언이다. 홍 부총리는 “가업 상속에 대해선 여러 가지 정부가 제도 개선을 하고, 또 조정 내용을 발표했는데 상속세에 대해서는 별도로 검토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추가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있는지 들여다보긴 하겠다”고 여지를 뒀다.

세종=조현숙ㆍ김도년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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