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인공호흡기 달고도 중환자실에 못가는 환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57)

6시간이 흐르도록 나와 아내는 방치되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라는 제안을 거부해서일까? 아니면 환자를 눕힐 침대를 달라고 언성을 높여서일까? 누구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사진 pixabay]

6시간이 흐르도록 나와 아내는 방치되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라는 제안을 거부해서일까? 아니면 환자를 눕힐 침대를 달라고 언성을 높여서일까? 누구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사진 pixabay]

응급실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한 여자는 새빨간 피를 한 움큼이나 토했다. 옆자리 노인은 끊어질 듯 계속되는 신음을 냈다. 한쪽 팔이 잘린 채 들것에 실려 들어오는 남자까지. (이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내는 이곳을 무서워했다. 그래서인지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아파 보였다. 치료에는 안정이 중요한데, 여기 있다간 멀쩡한 사람도 병이 날 거 같았다.

"아내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입원부터 하고, 검사는 병실에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환자를 맡아 줄 의사가 없다느니, 입원하면 검사가 어렵다느니 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며.

이 큰 병원에 의사가 한둘일 리 없는데. 입원하면 병실 담당 의료진이 따로 있을 게 아닌가? 검사도 마찬가지. 여기나 병실이나 어차피 같은 검사 아닌가? 나는 병실료를 더 내고 안정된 공간을 얻고자 했다. 아내를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 피땀 흘려 번 돈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의사는 끝까지 내 요청을 묵살했다.

그 후로 6시간이 흐르도록 나와 아내는 방치되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라는 제안을 거부해서일까? 아니면 환자를 눕힐 침대를 달라고 언성을 높여서일까? 누구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감히 저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되었나 보다. 저들에겐 환자의 목숨보다 오만한 자존심이 더욱 중요한가보다. 병원에서 환자는 철저하게 약자다. 무언가 수를 내야 했다. 밤이 늦었지만, 염치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알음알음 수소문 끝에 어느 높은 교수님께 부탁 전화를 넣을 수 있었다.

부탁은 주효했다. 오래지 않아 의사가 우리를 찾았다. 응급실에 들어온 지 여덟 시간 만에. 마침내. 역시 대한민국은 어디나 똑같다. 사돈의 팔촌이라도 인맥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접받지 못한다. 아무런 끈도 없이 응급실을 찾은 내 순진함을 탓했다. 처음부터 발품을 팔았다면 아내에게도 침대가 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전공의가 한참 동안 보이지 않는다. 바쁜 와중에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건지. 큰 소리로 불렀더니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보호자가 일단 입원해서 치료받게 해달라고 난리입니다."

무슨 환자냐고 물었더니 단순 감기겠다고 했다. 듣는 순간 인상이 찌푸려졌다. 감기로 대학병원에 입원하겠다고?

하긴, 너도나도 큰 병원에 입원하고 싶어 하니까. 한번 입원하면 작은 병원으로 옮기지도 않고. 다 나아서 끝장을 보기 전엔 퇴원도 좀체 안 하려 든다. 그 때문에 대학병원은 항상 만실이고, 응급실에는 병실이 없어 대기 중인 환자들이 십수 명씩 깔려있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게, 기관삽관을 한 채 인공호흡기를 달고서도 중환자실이 없어 응급실에 체류한다. 급기야는 감기까지 입원시켜달라고 조르는 판국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물론 환자 심정은 이해한다. 시장통 같은 응급실에 있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환자를 입원시키고 싶다. 얼른 병실로 옮겨서 이 응급실에서, 내 눈앞에서, 단 한 명이라도 더 치워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니까. 대학병원 병실이 감기 환자로 가득 차면 정작 중증 환자들은? 모르겠다. 내 알 바 아니지. 당장 눈앞의 지옥(응급실)부터 해치우고 볼 일이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어느 높으신 교수님이었다. 체면 좀 살려달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그 감기 환자 남편이 힘깨나 쓰는 분의 사돈의 팔촌의 조카님 되신단다. [사진 pixabay]

한창 일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어느 높으신 교수님이었다. 체면 좀 살려달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그 감기 환자 남편이 힘깨나 쓰는 분의 사돈의 팔촌의 조카님 되신단다. [사진 pixabay]

입원장을 내버릴까? 욱하는 심정이 들었다. 환자는 알려나 모르겠다. 대학병원에 감기 환자를 맡아 줄 전문과는 없단 걸. 결국 응급실 의사인 내가 맡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환자가 여기 응급실에 있는 동안은 내가 신경 쓰겠지만, 입원하고 나면? 내 몸뚱이가 하나인데 응급실을 비워놓고 멀리 병실을 들락거릴 리 없잖은가? 검사도 마찬가지. 응급실 환자일 때나 검사가 재깍재깍 이뤄지지, 입원 후에는 정규검사라서 결과 나오는데 하루는 더 걸릴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득이 될 게 없었다. 괜히 짜증이 나서 분풀이를 전공의에게 했다.

"다른 환자 숨넘어가는 거 안 보이냐? 악을 쓰든 난동을 부리든 눈길도 주지 마라. 지금 그렇게 한가한 상황 아니다." 전공의는 풀이 죽어 돌아갔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어느 높으신 교수님이었다. 체면 좀 살려달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그 감기 환자 남편이 힘깨나 쓰는 분의 사돈의 팔촌의 조카님 되신단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속에서 천불이 난다. 전공의를 다시 호출했다.

"아깐 미안했다. 감기 환자 그냥 빨리 치워버리자. 쓸데없는 전화 응대까지 하려니 진료에 방해되고 귀찮다. 꼴도 보기 싫어."

전공의는 차트 정리를 시작했다. 이로써 30분 이상 의사 하나가 전장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망할 놈의 퇴원 절차는 뭐가 이리도 많은 건지. 의사들은 바쁘다면서도 온갖 쓸데없는 일에 참으로 많은 시간을 잘도 허비하는 사람들이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