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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병 키우라는 얘기"…대장 혹 1㎝ 넘어야 수술비 인정

중앙일보

입력

"대장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때 그 지름이 1㎝ 이상이어야만 수술비를 인정해준다. 환자의 병을 키워서 진료하란 말이냐."

14일 오후 서울 가톨릭의대 마리아홀.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주최한 진료비 심사 기준.지침정비방안 세미나에서 의료계의 불만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의사.한의사.치과의사들은 "심사 기준이 투명하지 않고 일관성이 없으며 모호하다"면서 "이때문에 환자들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해 행복추구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진료비를 삭감하는 측(심평원)과 당하는 측(의료계)이 심사 기준을 두고 공개토론을 한 것은 1978년 의료보험(구 건강보험)이 출범한 이래 처음이다. 그만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없었던 셈이다.

김광민 대한마취과학회 이사가 포문을 열었다.그는 수술 중 발생한 우발사고에 대해 응급 인공호흡 비용을 인정하면서 반대로 정상 수술에서는 산소호흡료나 심전도 감시료를 인정하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한의사협회 김현수 이사는 "건강보험 재정난과 환자에 대한 적정진료는 관계가 없다"고 전제한 뒤 "진료권이 제한돼 환자가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며 '의사 쇼핑'을 하게 되고 그럴 경우 건보재정이 더 든다"고 주장했다.

대장.항문병학회 소속 한 의사는 "건강보험 심사 기준이 자동차보험보다 못하다"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범위 내에서 약물을 사용해도 제한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국립의료원 조필자 신경과장은 "알부민 수치(간기능 측정지표의 하나)가 3.0 이하일 때 알부민 처방을 인정했으나 건보 재정이 악화된 탓인지 지금은 2.5 이하로 기준이 낮아져 정상처방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경정신과학회 박정수 이사는 "예약없이 정신과 환자의 가족과 면담하면 가족면담료를 인정하지 않는가 하면 고가약 사용기간을 6~8주로 제한해 병세가 악화돼 입원하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강보험공단 김정희 연구팀장은 "건보 재원이 한정돼 있고 현재 적자상황인 점을 감안하면(진료비 지출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하다"며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보다 더 강하게 규제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의학적 타당성만 생각할 게 아니라 지불능력과 효용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정부는 그나마 이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 표준화된 임상진료 지침을 함께 마련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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