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약품 외제가 석권

중앙일보

입력

"고혈압 처방약의 절반이 노바스크예요."

서울 압구정동 朴모 약사는 "의약분업 후 약품 처방이 오리지널 약으로 바뀌면서 고혈압 약 시장을 외국계 제약사들이 거의 평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분기 의료기관이 외래환자에게 처방한 1만5천2백여개 약의 금액별 순위를 최근 집계한 결과 상위 10개 약품이 모두 외국계 제약사 제품이었다.

처방횟수별 순위로 집계하면 토종 제약사 제품이 상위 10위 중 9개를 차지했다. 하지만 약 단가가 훨씬 낮아 금액별 순위에는 한개도 끼이지 못했다.

건강연대 강창구 정책실장은 "의약분업을 전후해 약가 마진이 사라지고 처방전이 공개돼 의사도 오리지널 약으로 처방을 바꾸고 환자도 이를 선호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외국계 제약사 싹쓸이

한국화이자의 노바스크는 지난해 4분기 전체 약제비 8천8백여억원의 3.1%인 2백68억원어치를 외래환자에게 팔았다. 복지부는 입원환자까지 포함하면 노바스크 하나가 연간 1천5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2위는 한국와이어스의 난포호르몬제인 프리멜정으로 노바스크의 절반 가량인 1.5%(1백33억원)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스포라녹스캅셀-아마릴정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톱10' 중 폐경기 증후군(우울증·골다공증 등) 치료제인 난포호르몬제가 다섯개(프리멜·클리오제스트 등)를 차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난포호르몬제가 치료 목적 외 피부 탄력 증진 등의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많이 처방하는 의료기관을 조사해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속없는 토종제약사

처방횟수 면에서는 한미약품의 기관지 약인 뮤코라제정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뮤코라제는 개당 건강보험 약가가 노바스크(5백39원)의 6분의1에도 못미치는 82원에 불과해 전체 약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38%였다.

다음으로 삼일제약의 액티피드정-유한양행의 페니라민정-한미약품의 메디락에스산 등이었다.

이들 약의 단가는 1백원 이하에 불과했다.

◇대책

오리지널 또는 고가약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참조가격제 시범사업을 오는 7월께 시행할 방침이다.

비싼 약을 먹을 때는 환자가 약값의 일부를 부담하는 제도로 당초 지난해 8월 시행하기로 했으나 외국계 제약사들의 반발 때문에 늦춰져 왔다.

또 인체에 미치는 약효가 같다는 것을 입증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통과 품목을 늘려 싼 약으로 대체조제할 수 있는 길을 넓힐 예정이다.

서울대 의대 김창엽 교수는 "특허기간이 만료된 오리지널 약을 가려내 약값을 절반 이하로 대폭 낮추는 등 오리지널 약에 대한 적극적인 가격통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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