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추 장관 수사지휘권, 시기와 내용 모두 부적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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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어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수사지휘권 발동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적절치 못한 점이 많다. 오로지 윤석열 검찰총장을 밀어내기 위한 정치적 개입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수사지휘권은 한 번에 발동했지만 사실 두 개의 사건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라임 사태 관련 검사 및 정치인 비위 은폐 의혹, 다른 하나는 윤 총장 주변 인물 관련 의혹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것이다.

야권 로비 의혹에 기다렸다는 듯 행사 #잇따른 지휘권 발동, 정치개입 길 터줘

검사와 정치인 비위 은폐 의혹은 라임자산운용 전주인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전 회장의 옥중 입장문으로 촉발됐다.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잡는 짜맞추기 수사에 협조하라고 검찰이 회유했고, 야권 인사 로비에 대해 진술했으나 묵살됐다는 것이다. 자신이 검사들을 접대했고, 그 중 일부는 수사팀에 들어왔다는 내용도 있다.

법무부가 공개한 수사지휘권 내용을 보면 의혹 연루 검사·수사관 배제와 수사팀 강화, 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이 전부다. 의혹에 연루된 이들을 수사팀에서 빼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수사팀 강화는 지난주 법무부와 대검이 앞다퉈 발표했다. 그럼 남는 것은 지휘 라인에서 윤 총장을 쏙 빼는 것이다.

김봉현이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것이 불과 지난주다. 추 장관은 의혹이 나오자마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반대 방향의 로비 의혹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야당 정치인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를 지시해 진행 중이고, 검사 연루 의혹은 보고가 안 됐다는 해명도 무시한 채 윤 총장에게 책임을 미뤘다. 사실상 수사를 최종 지휘하게 된 서울중앙지검장과 남부지검장은 모두 친추미애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총장 측근 관련 사건은 워낙 오래됐고, 지금도 일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 또 윤 총장 장모 관련 의혹과 전 용산세무서장(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형) 관련 의혹은 인사청문회 당시 ‘아무 문제 없다’고 여권이 적극적으로 방어했던 사안이다. 이게 지금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야 할 만큼 시급하고 엄중한 사안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실제 발동된 것은 단 세 번밖에 없다. 이 중 두 번을 추 장관이 행사했다. 이전 장관들이 권한 행사를 아낀 것은 검찰의 수사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법 전체의 취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추 장관은 총장을 배제하기 위해 수사지휘권을 남발하고 있다. 명백한 수사 개입이다. 개입은 첫발을 떼는 것이 어렵지, 한 번 열린 문으로 두 번, 세 번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앞으로도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쉽게 개입할 길을 터줬다는 비판에서 추 장관은 벗어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