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독감 백신 맞고 벌써 3명째 사망, 질병청 대책 내놔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뒤 갑자기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자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불안해하는 국민이 한둘이 아니다. 독감 백신 접종을 계획대로 차질없이 해야 코로나19 방역 전선에 부담을 덜어줄 텐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어 우려스럽다.

어제 대전에서 무료 백신을 맞은 80대 노인이 다섯 시간 만에 숨졌다. 전북 고창에서 그제 독감 백신을 접종한 70대 노인 A씨(78)가 이튿날 숨져 보건당국이 인과관계를 조사 중이다. A씨는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그제부터 시작된 정부의 접종 계획에 따라 동네 의원에서 보령바이오파마 백신을 접종했다고 한다. 앞서 인천시 거주 고3 남학생 B군(18)이 지난 14일 동네 의원에서 무료 독감 백신을 맞고 이틀 뒤 숨졌다. B군은 국가조달 물량으로 신성약품 측이 공급한 백신을 맞았다. 보건당국은 A·B 두 사람이 맞은 백신은 상온 노출로 효능 저하 우려가 제기되거나 백색 입자가 검출된 제품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A씨는 생전에 혈압약을 복용했으나 B군은 알레르기 비염 외에 특이한 기저질환(지병)은 없었다고 한다. 아직 세 사람의 사망 원인을 무료 백신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백신 접종 직후에 10대와 70, 80대가 잇따라 숨졌다는 점에서 인과관계를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인천 B군 사례를 보면 14일 백신을 맞고 16일 숨졌는데도 질병관리청은 사망 사흘 뒤인 19일에야 사망 사실을 발표했다. 늑장 행정이었다.

백신 접종 이후 사망 사례가 한 건이라도 발생하면 전국의 병·의원과 보건소에 신속히 전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국의 발표가 1분1초라도 늦어지면 그만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올해 독감 무료 백신 사업은 출발부터 위태위태했다. 질병청은 국가 조달 물량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지난달 21일 밤 무료 접종 사업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면서 “상온 노출 백신을 맞은 국민은 한 명도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직후부터 상온 노출 백신을 맞은 사례가 속출했고 수천 명까지 불어났다. 질병청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한 사실이 들통났다. 지난달 12일 질병관리본부가 질병청으로 승격되면서 조직·인력·예산이 급격히 불어났다. 몸집이 커졌지만 질병청의 행정 서비스는 향상은커녕 뒷걸음질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지켜줘야 할 질병청이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키우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확산하는 ‘트윈데믹’ 위험을 줄이려면 백신 접종 후 사망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투명하고 신속하게 규명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