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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하면 친일파” 후폭풍…조정래·진중권 연일 설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문단 생활 50년을 맞은 『태백산맥』의 조정래(77) 작가와 진보 진영의 위선·궤변을 비판해 온 논객 진중권(57) 전 동양대 교수의 설전이 며칠째 뜨겁다. 지난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정래의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조 작가가 한 말이 발단이다.

진 “대통령 딸도 해당, 이 정도면 광기” #조 “광기? 사과 안하면 책임 묻겠다” #진 “문인이면 문장 제대로 써라” #조 “국어공부한 사람 다 알아들어”

간담회에서 조 작가는 “이영훈 교수가 『태백산맥』에 대해 비판을 했는데 그런 (역사적) 부분을 소설에 얼마나 많이 투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영훈은 신종 매국노이고 민족 반역자입니다.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앞서 이런 말도 했다. “반민특위는 반드시 민족정기를 위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150만, 60만 하는 친일파들을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정래(左), 진중권(右)

조정래(左), 진중권(右)

진중권은 간담회 후 나온 연합뉴스의 기사를 당일 페이스북에 링크하며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죠”라고 썼다. 연합뉴스의 기사 제목은 ‘조정래 “일본유학 다녀오면 친일파 돼…150만 친일파 단죄해야”’였다. 이어 진중권은 “대통령의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아는데…”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조정래는 14일 오후 ‘주진우 라이브’에 나와 “작가를 향해서 광기라고 말을 한다. 나는 대선배다.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작가라는 사회적 지위로도 그렇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대통령의 딸까지 끌어다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을 시킨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중권이 링크한 연합뉴스의 기사 대신 다른 일간지들의 보도를 예로 들며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토착왜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주어부를 분명히 설정했는데 뒷부분만 씀으로써 제가 일본 유학 갔다 오면 다 친일파라고 말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에 진중권은 15일 오전 1시쯤 재반박 글을 올렸다. “그의 말대로 ‘토착왜구’가 문장의 주어였다고 하면 괴상한 문장이 만들어진다. 일본에 가기 전에 이미 토착왜구인데 어떻게 일본에 유학 갔다 와서 다시 친일파가 되나.” 또 “문인이라면 문장을 제대로 써야죠. 거기에 ‘무조건 다’라는 말이 왜 필요합니까”라고도 덧붙였다.

조정래는 이날 오전 7시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토착왜구’라고 하는 주어부를 빼지 않고 그대로 뒀다면 이 문장을 그렇게 오해할 이유가 없고 국어 공부한 사람은 다 알아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말과 글에 대한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둘 사이 인식의 차이는 보다 근본적이다. 조정래는 ‘주진우 라이브’에서 “이스라엘 같이 민족 정기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자들을 엄히 다스리는 법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중권은 15일 페이스북에 “사실 그의 발언의 끔찍함은 다른 데에 있다”며 반민특위 설치, 150만~160만 친일파 처단 주장을 지적했다. “도대체 그 수치는 어디서 나왔고, 특정인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라 판정하는 기준은 뭔가.”

토착왜구

일본 해적을 뜻하는 왜구(倭寇)에 ‘대대로 그 땅에 살고 있다’는 뜻의 토착(土着)이 결합한 말로 ‘한국에 있는 친일파’ ‘한국에서 일본 편을 들며 반역행위를 한 자’ 등의 의미로 쓰인다. 항일 유학자 이태현(1910~1942)의 유고 산문집 『정암사고』에 친일부역자란 뜻으로 등장하는 ‘토왜(土倭)’를 어원으로 꼽기도 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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