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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었던 중국, 노련해졌나…日국채 지렛대로 위안화 강세 대응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서울 중구 외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5월 서울 중구 외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가격은 오른다. 중국 위안화가 딱 그렇다. 중국 경제가 반등하면서 해외 투자 자금이 몰리고, 그 결과로 위안화 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그러나 위안화 가치 상승에 경기를 일으켰던 중국 정부의 최근 대응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1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9월 외국인은 위안화 채권에 1082억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558억 달러)의 배 수준이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금액도 890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이 외국인의 채권투자 관련 규제를 완화한 데다, 미 국채(10년물)와 금리 차이가 지난달 말 기준 2.45%포인트까지 확대된 영향이다. 중국 우수 회사채 금리는 4~5%에 육박한다.

수익률을 따라 돈이 몰려들면서 위안화 값은 지난 7월 이후 5.19%나 상승했다. 지난 9일에는 하루에만 1.4% 오른 달러당 6.6947까지 치솟으며 일일 상승 폭으로는 15년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화가치는 국가의 경제력을 반영하는 지표다. 경제 상황이 좋으면 오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통화가치의 급등은 마냥 좋지만은 않다. 달러화로 환산한 수출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수출 경쟁력 차원에서는 불리하다. 반대로 자국 통화로 환산한 수입품 가격은 떨어지게 돼 수입은 늘어날 수 있다.

중국인민은행

중국인민은행

특히 중국은 위안화 가치 상승을 꺼려왔다. 고시환율 절하 등을 통해 통화가치 상승에 제동을 걸어왔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위안화 값은 중국인민은행의 고시환율 ±2% 범위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의 급작스러운 절하에 금융 시장이 당황한 경험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최근 움직임은 그동안의 기조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일단 위안화 강세를 일정 수준 용인하는 듯한 모습이다. 속도 조절에는 나서지만 방식은 예전처럼 거칠지 않다. 일단은 시장의 흐름을 유도하며 맡기는 모양새다.

위안화 강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중국이 꺼내 든 카드는 증거금 폐지다. 지난 11일 시중은행이 외국 통화를 매입할 때 인민은행에 예치하는 증거금(거래액의 20%)을 폐지했다. 중국 당국은 2018년 위안화 약세를 막기 위해 이를 도입했다. 증거금이 없어지면 외국 통화를 사고파는 비용이 줄어들면서 거래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12일 이후 위안화 가치는 조금 떨어지며 15일 위안화 값은 달러당 6.7221위안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위안화 몸값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중국 당국의 또 다른 움직임 중 하나는 일본 국채 매입이다. CNBC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4~7월 138억 달러 규모(1조4600억엔)의 일본 국채를 사들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배나 늘어난 것이다. 사실상 0%대인 일본 국채 수익률을 감안하면 언뜻 이해되지 않는 행보다.

로스 허치슨 애버딘 스탠더드 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 채권 투자 책임자는 CNBC 인터뷰에서 “중국이 일본 채권을 사들이는 것은 미국 달러에 대한 지나친 의존(익스포저)을 줄이는 한편 위안화를 팔고 일본 국채를 사들이면서 위안화 가치 상승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당국의 은근한 속도 조절에도 위안화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2분기 ‘V자 반등’에 성공한 중국 경제가 올해 전 세계 국가 중 유일한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이 올해 1.9%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다음 달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위안화 상승세에 힘을 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중국 때리기’의 양상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에스와르 프리사드 브루킹스 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의 강세와 위안화 가치를 감안하면 중국에 대한 투자는 괜찮은 베팅이지만 위안화를 안전자산으로 여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위안화 금융 상품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데다 여전히 자본시장 개방 수준이 낮고, 미·중 갈등 등의 변수에 따라 언제든지 위안화 값이 급락할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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