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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세계 2위 오른 김세영 “다음은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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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개인 첫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여자 골프 세계 2위까지 오른 김세영. 그는 ’세계 1위도 해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AFP=연합뉴스]

개인 첫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여자 골프 세계 2위까지 오른 김세영. 그는 ’세계 1위도 해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AFP=연합뉴스]

 “숙제 하나 해치웠어요. 자고 일어나니까 ‘뭔가 끝났구나. 해냈구나’ 하는 느낌이 막 밀려오더라고요.”

메이저 우승 김세영 단독 인터뷰 #“남 실수보다 내가 잘하는 게 우선 #트로피는 가장 잘 보이는 곳 보관”

12일 밤(한국시각)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선 홀가분한 마음이 묻어났다. 전날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세영(27)을 전화로 만났다. 미국 진출 6시즌 만에 목표였던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다. 우승 당일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는 “우승을 자축하는 시간보다 남들과 기쁨을 나누는데 (시간을) 더 할애했다”고 했다. 이어 “많은 지인과 계속 연락하고 얘기했더니 시간이 금방 갔다. (좋아서) 우는 친구도 있었다. 그만큼 기뻐해 줘 참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김세영은 2015년 LPGA 데뷔 후 매 시즌 1승 이상 거뒀다. 어느새 두 자릿수 우승(11승). 아무리 그래도 메이저 대회는 긴장될 법했다. 최종 라운드 전날 알람 시계를 잘 못 맞췄다. 그 바람에 예정보다 30분 늦게 대회장에 도착했다. 그는 “잠을 못 자진 않았는데 뒤척였다. 알람 시간을 잘못 맞췄다. (오전) 6시 반에는 출발했어야 했는데, 7시10분에 했다. 호텔에선 몰랐다가 늦게 나갔다는 걸 뒤늦게 이해했다. 그런 일은 처음 겪었다. 그만큼 긴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각으로 액땜한 셈이다. 그는 “대회장에서 당황했을 텐데, 마음을 다잡고 나 자신한테 더 집중하려고 했다. 오히려 좋은 일이 됐다”고 말했다.

대회 첫날, 김세영은 우승권이 아니었다. 1오버파였다. 2라운드에서 5타를 줄여 선두로 뛰어오르면서 우승 기회를 잡았다. 언젠가 해야 할 메이저 우승. 모처럼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준비도 철저한 터였다. 대회 2주 전부터 준비했다. 그는 “원래 경기 들어가면 외부 일은 일부러 차단해 집중하려는 게 있다. 집중을 안 하면 성격이 유들유들해서 잘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이번 대회 앞두고 내 감정에 집중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그는 “남의 실수를 바라기보다 내가 잘하는 게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나섰다”고 부연했다. 그는 마인드 컨트롤을 이번 대회 우승 비결로 꼽았다. 그는 “중계 화면을 본 가족들도 내가 이번에 침착하게 보인다고 했다. 게임을 끌고 가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한 게 표정에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셀카를 찍는 김세영. [AFP=연합뉴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셀카를 찍는 김세영. [AFP=연합뉴스]

코로나19 탓에 많은 갤러리 앞에서 우승하는 건 불가능했다. 김세영은 그래도 우승 기분을 한껏 즐겨보려 했다. 그는 “대회 당일 펜실베이니아주 당국에서 대회가 열린 골프장 회원 100명의 관전을 허용했다. 그 분들이 축하해 줘 우승한 느낌을 더 받았다”고 말했다. “우승 트로피가 정말 무거웠다”던 그는 "한국 집에 우승 트로피를 진열해놨는데, 이 대회 우승 트로피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야 하겠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특히 우승 경쟁을 펼친 박인비에 대한 감사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그에게 5타 뒤진 기록으로 준우승한 박인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세영은 언터처블이었다. 메이저 우승자다운 플레이를 펼쳤다”고 진심을 담아 축하해줬다. 김세영은 “인비 언니와 같은 ‘대언니’와 대결 구도가 됐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나중에 언니 인터뷰 내용을 봤는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정말 멋있는 언니다. 그런 점에서도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별명이 많다. 역전의 명수, 연장의 여왕, 승부사, 빨간 바지의 마법. 여기에 메이저 퀸을 추가했다. 이번 우승에 칭찬이 쏟아지자 그는 “과찬이다. 그런데 이런 과찬은 그래도 받겠다”며 웃었다. 이어 “수식어가 자꾸 생겨서 좋다. 날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 아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반겼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김세영은 이번 우승 덕분에 여자골프 세계 2위까지 올라섰다. 개인 최고 랭킹이다. "세계 2위에 오르게 됐다”고 귀띔하자 그는 "아 진짜”라고 되묻더니 "오 나이스”라며 좋아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세계 1위도 해보고 싶다. 세계 1위에 도전~, 도전해야죠”라고 해맑게 말했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룬 메이저 우승이어서 값졌다. 하지만 부족한 것도 많다. LPGA 골퍼로서 목표한 바를 차근차근 이뤄가고 싶다.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다짐했다. ‘가야 할 길’에는 그랜드슬램도, 올림픽 메달, 세계 1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더 중요한 건 지난해보다 나은 올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가 왜 그가 ‘꾸준함의 대명사’인가를 설명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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