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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짓는 대학가 매장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폐업할 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2일 서울 서대문구 이대 인근 가게들이 '임대'를 써붙여놓고 있다. 이우림 기자.

22일 서울 서대문구 이대 인근 가게들이 '임대'를 써붙여놓고 있다. 이우림 기자.

“매출이 90% 이상 떨어졌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폐업할 걸….”

2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이대 인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정인숙(56)씨의 넋두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대학들이 2학기에도 비대면 수업을 이어가면서 주변 상권이 매출에 직격단을 맞고 있다. 정씨는 “2월에 코로나19가 시작되고, 5~6월에 재난지원금 때문에 잠시 반짝했다가, 7월부터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25년간 장사하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니까 폐업을 하고 싶은데 임차인이 보증금 돌려줄 돈이 없다고 해서 못 나가고 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보증금이랑 권리금, 수리비까지 거의 3억원 가까이 주고 들어왔다. 권리금을 포기하고 보증금만이라도 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하니까 난감하다“고 말했다.

대학가 곳곳에 '임대문의' 나붙어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이대에서 신촌으로 이어지는 명물 거리 곳곳에는 ‘임대 문의’를 써 붙이거나 내부가 텅 비어있는 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금 공실률이 50% 정도 될 거다. 3월부터 경기가 완전히 죽었다”라며 “임대 문의는 종종 오는데 임대료가 비싸서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이대 부근에서 문구잡화점을 운영해 온 유동근(57)씨도 최근 폐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매출이 70%가 떨어졌다. 학생도 없고 인근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 20년 장사했는데 더는 못 버틴다”며 “폐업을 생각하는데 철거비와 인테리어 복구비가 부담스러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사 이어가도 임대료 걱정에 '한숨'  

폐업은 하지 않았지만, 장사를 이어가는 가게들도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12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67)씨는 전날 작성된 명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어제 하루종일 10그릇 팔았다”며 “주변에서 줄줄이 폐업한다. 비어 있어도 장사가 안되니 누가 들어오긴 하겠냐. 난 임대 기간이 남아서 일단 폐업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밀린 임대료를 갚기 위해 대출 2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정부가 선심성으로 지원금을 주려고 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임대료 조정안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10년 넘게 카페를 운영해온 문모(50)씨 역시 최근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완화되자 오히려 매출이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문씨는 “2.5단계 할 때는 우리 카페는 해당이 안 돼 오히려 손님이 몰렸는데 2단계로 완화돼 프랜차이즈 매장도 문을 여니 손님이 줄었다”며 “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전기료를 빼주거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게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공연 취소 줄잇자 대학로도 직격타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18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한 김현희(47)씨는 공연이 취소되면서 가게 매출도 급감했다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18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한 김현희(47)씨는 공연이 취소되면서 가게 매출도 급감했다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연극의 메카’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모이는 대학로도 '코로나 직격타'를 맞았다. 22일 대학로에서 연극 티켓을 팔고 있던 A씨는 “관객 수가 줄어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코로나 확산 우려 때문에 아예 공연 자체를 연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로 인근에서 18년 동안 음식점을 이어온 김현희(47)씨는 텅 빈 가게에서 혼자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내가 오죽하면 고통을 잊으려고 뜨개질을 하고 있겠냐. 보통 같으면 너무 바빠서 실 잡고 있을 시간도 없는데 손님이 아예 없다”라며 “예전같으면 공연하는 배우들이 달아놓은 장부가 30~40개 정도씩 돼야 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추석 때도 원래 대학로에 공연이 많았는데 이젠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울먹였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발표한 올해 상반기 폐업지원금 신청자 수는 4526명으로 지난해 연간 신청자의 70% 넘긴 상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현금성 지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소상공인들이 폐업한다는 건 결국 임계치까지 왔다는 것"이라며 “무작정 현금을 지원하기보다는 임대료 등 고정비용이나 공과금 같은 생산 활동에 연관된 부분을 지원해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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