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원 대 자산가인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부적절 수주 의혹에 휩싸였다. 박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최근 5년간, 박 의원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들이 피감기관인 국토교통부 산하기관 등으로부터 1000억 원대 매출을 올렸다는 논란이다. 여당은 사퇴를 요구하며 공세를 펴고 있다.
국민의힘의 공식입장은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파악하겠다”(당 관계자)는 입장이지만 당 일각에선 “공당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피감기관 773억 수주, 신기술 공사 371억”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18일 국토부 자료를 분석해 “박 의원과 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가 5년 간 국토부 산하기관 등으로부터 공사 수주와 신기술 이용료 명목으로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지난 5년여 동안(2015년 4월~지난 5월) 국토위원이었고, 20대 국회에선 야당 간사를 맡았다.
진 의원실에 따르면 이 기간 혜영건설(9건), 파워개발(9건), 원하종합건설(7건)은 국토부 산하기관으로부터 총 25건, 773억1000만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다. 2018년 3월 혜영건설이 한국도로공사 충북본부와 맺은 포장유지보수 공사 계약(28억8000만원), 2019년 4월 파워개발이 도로공사 전남본부와 맺은 도로 포장공사 계약(68억 5000만원)이 대표적이다.
진 의원실은 이외에도 원하종합건설, 원하코퍼레이션이 신기술(STS 공법) 이용료 등 명목으로 기관에게서 5년간 371억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STS(Steel Tube Slab) 공법은 터널 공사 시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강철관을 삽입하는 기술이다.
혜영건설은 박 의원이 대주주인 건설업체이고, 파워개발은 박 의원의 친형, 원하종합건설은 박 의원의 아들이 대표를 맡고 있다. 원하코퍼레이션은 박 의원이 과거 대표이사(1994년~2013년)를 지낸 업체다. 이 업체들은 모두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빌딩에 입주해 있다.
천준호 민주당 의원실은 이 업체들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공사를 따냈다며 계약 내역을 추가 공개했다. 천 의원실에 따르면, 박 의원이 의원 배지를 단 2012년 이후, 이들 업체는 경기도와 경북 등 지자체로부터 총 487억원 규모의 택지 조성, 도로포장 공사(12건)를 따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업체들은 박 의원이 국회에 입성(2012년)하기 전이나, 국토위 소속(2015년 4월) 전에도 관급 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0년 3월 도로공사 전남본부와 맺은 교량 보강공사(50억4000만원) 계약, 2013년 6월 도로공사 부산경남본부와 맺은 아스팔트 공사(31억2000만원) 등이다.
박 의원 측 “말도 안 된다…영향력 행사 없었다”
박 의원 측은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공세”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 업체들은 박 의원의 국회 입성 전에도 규모가 큰 관급 공사를 맡았다”며 “박 의원은 업체 경영에 관여한 적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계약은 공개경쟁 입찰로 진행됐고, 박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한 일도 없다”며 “문제가 있었다면 경쟁 업체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했다.
여당이 제기한 ‘STS 공법 이용료’ 의혹에 대해선 “기술 이용료만 받은 게 아니라, 업체가 해당 기술을 활용해 실제 공사에 참여했다”고 반박했다. 박 의원은 21일 오후 2시 해명 기자회견을 연다.
“불법 입증 안 돼” vs “확실히 하지 않으면…”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는 엇갈린다. 일각에선 “불법이 입증되진 않았지만, 국민 정서상 당이 흔들릴 수 있다”(초선의원)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윤미향ㆍ이상직 민주당 의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놓고 공세를 펴는 와중에, 당 중진의원의 의혹이 불거진 탓이다. 최근 민주당이 재산 축소 신고 논란을 빚은 김홍걸 의원을 제명한 데다가, 이상직 의원에 대한 처분도 거론되고 있는 터라 당 지도부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반면 “여권 인사들의 연이은 논란에 코너에 몰린 민주당의 물타기 공세”(중진의원)란 의견도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의원에게 신속 정확하게 입장을 보고하라고 했다. 박 의원이 소명 자료를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며 “소명 내용과 팩트를 바탕으로 객관적 판단을 내리겠다”고 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현재로선 원내 지도부와 같은 입장이라고 한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15일 박 의원을 부패방지법 및 공직자윤리법 위반,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박 의원은 지난달 25일 “사리사욕을 위해 권한을 사용한 적 없지만, 당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국토위를 사임하고 환경노동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