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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한·미 평화동맹’이란 말장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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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현 정권 실세들은 묘한 표현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데 능란한 듯하다. “한·미 관계를 냉전 동맹에서 평화 동맹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최근 발언이 바로 그렇다. 언뜻 듣기에 그럴싸한 이 주장엔 그릇된 두 가지 시각이 배어 있다. 첫째, 기존의 한·미 동맹은 이념 대결로 얼룩진 냉전시대의 유물로서 청산돼야 하며 둘째, 따라서 향후 양국 관계는 군사 관계를 뺀 평화 추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동맹의 본질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의도적 왜곡일 수밖에 없다.

동맹은 무력 충돌을 전제로 한 관계 #간섭받지만 안보 보장의 이득도 커 #맹탕 만들려는 시도 좌시해선 안 돼

동맹이란 본디 전쟁 같은 무력 충돌을 전제로 맺어진 관계다. 적국과의 싸움에 대비, 전쟁 발발 시 우방국 또는 적의 적과 군사적으로 서로 돕기로 약속하는 게 동맹이다. 태생이 이럴진대 평화 동맹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사랑 폭탄’ ‘우정 탱크’가 우스꽝스럽게 들리듯 평화 동맹도 실소를 자아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동맹은 예로부터 애용되던 안보 전략이다. 동맹을 맺으면 적은 군사력을 유지하더라도 전쟁 발발 시 몇 배의 화력을 동원할 수 있는 까닭이다. 국가 경영 차원에서 여간 남는 장사가 아니다. 유사 이래 거의 모든 나라가 동맹을 좇아 끊임없이 합종연횡(合從連衡)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동맹에도 대가가 따른다. 원치 않는 동맹국 분쟁에 끌려들어갈 수 있다. 동맹국의 간섭도 골칫거리다. 특히 초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비대칭적 동맹에서는 더 심하기 마련이다. 우리도 역사의 골목골목에서 미국의 간섭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핵무기를 못 만든 것도,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리지 못했던 것도 죄다 미국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1973년 대한해협에서 수장될 뻔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살린 것도 미 중앙정보국(CIA)이었다.

어쨌든 이렇듯 간섭받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는, 소위 ‘안보-자율성 교환 동맹’일지라도 전체적 득과 실을 따져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게 옳다. 미국이 통일 문제를 포함해 한국 상황에 간섭해 왔다는 진보 세력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차돌처럼 단단해야 할 한·미 군사동맹을 별 알맹이 없이 그저 평화롭기만 한 북유럽 국가와의 관계처럼 만들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 안보의 기틀을 무너뜨리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우호 관계, 특히 67년간 이어져 온 한·미 동맹은 소중한 자산이다. 국가 간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공산권의 위협을 막기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소련 붕괴 후에도 유지된 것은 그간에 축적된 동맹 간 신뢰 덕분이었다. 군사적 상호 지원 외에도 단단한 동맹으로 할 수 있는 건 참으로 많다.

일부에선 50배 넘는 남북 간 경제 격차로 남쪽 군사력이 월등한데 무슨 동맹 타령이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는 북핵이 없을 때의 얘기다. 지난해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핵우산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활용한 단기속결전을 펴면 남북한 군사력은 1 대 1.9인 것으로 평가됐다. 북측 군사력이 거의 두 배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인영 장관이 평화 동맹 운운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북핵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맹을 더더욱 강화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를 흔드는 말만 늘어놓을 리 만무하다.

최근 최종건 외교부 차관이 밝힌 한·미 외교부처 간 국장급 실무협의체인 ‘동맹 대화’ 신설 방침도 양국 관계에 깊은 흠집을 낼 사안이다. 2년 전 미국 주도로 만든 ‘워킹그룹’도 잘 안 돌아가는 판에 비슷한 조직을 만들겠다면 워싱턴 측에서 좋아할 리 없다.

국내 정치가 그렇듯 국제 관계도 살아 있는 생물이다. 한·미 동맹도 상대적 국력 차가 주는 데에 맞춰 조정하는 게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북핵 위협 속에서 한·미 동맹을 맹탕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결코 좌시해선 안 된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