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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카페 문 닫았더니 ‘방역 사각지대’ 고시원 찾는 청년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서울 성동구의 한 고시원에서 성동구청 관계자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지난 3월 서울 성동구의 한 고시원에서 성동구청 관계자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최근 경기도 성남의 한 고시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고시원은 그동안 좁은 공간에 밀집한 환경, 위생에 취약한 공용시설 등을 이유로 ‘방역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시민단체는 취약계층이 겪는 주거 불평등 문제가 코로나 19를 계기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고시원 방역 취약”

지난 5월 서울 은평구 한 고시원에서 은평구청 방역팀 직원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실내 살균소독 및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지난 5월 서울 은평구 한 고시원에서 은평구청 방역팀 직원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실내 살균소독 및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방역 당국은 이번 성남 고시원 코로나 19 집단감염 사태의 원인을 공용시설로 지목했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성남 고시원 집단감염은 공용 화장실·샤워실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잠정 파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월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고시원·쪽방촌에 적용하는 방역 지침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 배포했다. 고시원·쪽방촌의 조리실·세탁실 등 공용시설을 주기적으로 소독하는 내용이 지침의 핵심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물체 표면에서 수일간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침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고시원 거주자들은 전했다.

성남 수정구의 한 고시원 관계자는 “고시원은 사람 간 밀접 접촉이 수시로 이뤄지기 때문에 방역 위험시설”이라며 “특히 고시원 내 공용시설은 많은 사람이 이용하다 보니 비위생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산 한 고시원에서 지내는 재수생 A씨(20·여)는 “고시원에서 화장실·부엌·세탁실을 공용으로 쓰는데, 공용 부엌은 공간이 워낙 좁고 그릇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다들 공용 그릇을 쓴다”며 “코로나 19 사태 이후 위생 면에서 걱정이 많이 된다. 수저가 제대로 씻겨 있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갈 곳 잃은 청년, 고시원 찾는다  

8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의 한 맥도날드 매장. 전기 콘센트가 있는 테이블에서 학생들이 노트북을 펴고 공부를 하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이우림 기자

8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의 한 맥도날드 매장. 전기 콘센트가 있는 테이블에서 학생들이 노트북을 펴고 공부를 하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이우림 기자

고시원 곳곳에 감염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 최근 수도권 내 도서관, 독서실, 스터디 카페, 프랜차이즈 카페 등 공부 공간 이용에 제약이 생긴 수험생들이다. 코로나 19 확산을 막고자 다중이용시설을 제한했더니 ‘방역 취약지대’인 고시원으로 몰렸다. 서울에 살던 공무원시험 준비생 B씨(22·여)는 지난달 말 충북의 한 고시원으로 홀로 내려왔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를 2.5단계로 강화하면서 도서관·독서실·카페 이용이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방법이다. B씨는 “서울 신림동 고시원보다는 주거 환경이 괜찮을 것 같아서 산속 시골을 택했다. 시설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면서도 “개인 자습 공간들이 문을 닫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장기 대책 필요”  

시민단체는 복지 사각지대는 방역 사각지대와 연결된다며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에 ‘집’이 아니라 ‘방’에서 사는 청년들이 많기 때문에 최근 개인 카페 등으로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몰리거나, 고시원을 찾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청년 10%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방에 산다”며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이런 현실이 다시 상기된 것일 뿐이다. 방역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시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고시원은 코로나 19 사태 초기 때부터 감염 취약 공간으로 지적돼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절대 지켜질 수 없는 곳”이라며 “고시원은 주거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 활동가는 “주거 취약계층에게 고시원에 사는 비용을 일시적으로 지원해주는 기존 정책보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임대주택 물량을 늘리는 등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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