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찬스’ 쓸 수 없는 부모들의 슬픔 더 이상 없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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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취업준비생 때 일이다. 수십 군데 원서를 넣고 몇 군데 시험을 통과해 면접 볼 일이 생겼다. 면접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버지가 방으로 날 불렀다. 대뜸 “미안하지만 나는 언론 바닥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러니 네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황당했다. ‘뭐 저런 당연한 얘기를, 뭐 저리 의미심장하게 하시지’라는 마음으로 “알아서 할게요”라고 답한 뒤 바로 나왔다. 나온 뒤에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뭐가 미안하시다는 거지?”

자신만만했던 마음과 다르게 그해 면접에서 다 떨어졌다. 회사에서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자존감도 같이 떨어졌다. 조각난 자존감을 겨우 기워가며 꾸역꾸역 다시 인턴을 하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치렀다. 이듬해 결국 취업에 성공했지만 1년 전 생긴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궁금증은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풀렸다. 세상에는 조금 다른 부모들이 있었다. 자식을 논문 제 1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부모, 봉사활동 시간을 대신 채워주고 표창장을 줄 수 있는 부모, 대학 면접관에게 전화하는 부모, 대기업 임원에게 면접 청탁을 할 수 있는 부모 등이다. 그런 부모를 보며 평범한 부모는 죄인이 된다. 남이 해준 걸 나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인 시절 휴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인 시절 휴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최근 법무부 장관의 아들 A씨가 군인 시절 휴가를 연장한 일을 두고 논란이다. A씨는 2017년 6월 5일부터 23일까지 병가를 썼다. 복귀 예정일에도 집에 머무르며 개인 연가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상급 부대 대위가 직접 휴가 연장을 처리하겠다고 나섰다는 A씨 동료 병사의 증언이 나왔고 외압 의혹이 나왔다. 그 대위는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현 법무부 장관의 보좌관에게 휴가 연장 신청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육군 규정에 따르면 민간병원에서 진료받기 위해 병가를 쓰려면 입원확인서와 진료비계산서 등 서류를 내야 하고 군은 이를 5년간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A씨 관련 서류는 없었다.

여당 의원은 “절차가 잘못됐으면 (A씨의) 상관이 책임지면 된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A씨가 군에 갈 필요가 없는데 갔으니 오히려 칭찬해야 한다”고 감쌌다. 법무부 장관은 진위를 묻는 야당 의원에게 “소설을 쓴다”고 일축했다. “아이가 많이 화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A씨의 변호인은 “병가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다 냈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진실은 검찰 조사로 밝혀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디 ‘엄마 찬스’가 더이상 없길 바란다. 자식 휴가 연장을 대신 신청해 줄 보좌관이 없고 함께 아이를 변호할 동료 국회의원이 없는 부모가 미안한 마음에 많이 화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