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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의사 파업에 가슴 졸이는데…대통령은 기름 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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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파업하는 의사와 헌신하는 간호사를 대비시킨 문재인(얼굴) 대통령의 2일 페이스북 메시지가 큰 논란을 낳았다. 의사들은 “오전엔 정부가 대화하자고 해놓고, 오후엔 대통령이 대놓고 편 가르기를 한다”(수도권 대학병원 전임의)며 들끓었고, 국민의힘(미래통합당 후신)은 “간호사들에게 의사를 향한 대리전을 명한 것이냐”(김은혜 대변인)며 ‘국민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간호사 치켜세운 페북 글 올리며 #“의사들 떠난 의료현장 지켜 감사” #야당 “국민 편가르기 발언” 비판 #아이유의 냉조끼 선물 언급하자 #팬들 “간호사만 준 것 아니다” 해명 #정세균 총리는 시·도 의사회 만나 #“정부 할 만큼 해, 의사 설득해 달라”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전공의 등 의사들이 떠난 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분들을 위로하며 그 헌신과 노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휴진 중인 전공의 등에 대해 “전시 상황에서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 “대단히 유감”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이번엔 의사들을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 의료 현장에 있는 간호사를 격려하는 방식으로 의사들을 압박한 모양새였다.

간호사를 향해 문 대통령은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울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라고 했다. 이어 “진료 공백으로 환자들의 불편이 커지면서 비난과 폭언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도 한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가중된 업무 부담, 감정노동에까지 시달려야 하는 간호사분들을 생각하니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특히 “지난 폭염 시기, 옥외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의 마음을 울렸다”며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고 썼다.

대통령 “폭염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 간호사” 의사들 “이간질”

문재인 대통령의 2일 간호사들 격려 글.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등 표현을 써 국민 갈라치기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2일 간호사들 격려 글.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등 표현을 써 국민 갈라치기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면서 가수 아이유의 아이스 조끼 기부 소식을 전하며 “간호 인력 확충, 근무환경 개선, 처우 개선 등 정부는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 공공병원의 간호 인력을 증원하는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신속히 하겠다”고 했다. 그러곤 “간호사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로 글을 맺었다.

의사들은 발칵 뒤집혔다. 지난 1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에게 “제로 상태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인 상황이어서 당혹감이 더 컸다고 한다. 대한간호협회 등 간호계가 성명서 등으로 의사 파업을 비판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정부가 의료계 분열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수도권 대학병원 전임의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의사 파업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피는 것”이라고 했고,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간부는 “약 올리는 듯한 뉘앙스로 받아들인 이들도 있다. 협상문이 코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안타깝다”고 했다. 의사 커뮤니티엔 “이간질 한다” “내 편 네 편 부채질 좀 그만하라” “이이제이(以夷制夷) 시작이다”는 글이 쏟아졌다.

코로나19 방역의 공을 사실상 간호사에게 돌리는 듯한 문 대통령의 표현을 두고도 “간호사분들도 고생하셨지만, 대통령이 ‘의사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너무하다”(대전협 간부)는 반응이 나왔다. 보건복지부 통계도 문 대통령의 발언과 차이가 있다. 지난 6월 1일까지 방역 최전선에 뛰어든 ‘의료인력 지원 누적 현황’에 따르면 총원 3819명 가운데 의사(1790명)가 가장 많았다. 다음이 간호사·간호조무사(1563명), 임상병리사 등 기타 인력(466명) 순이었다.

의사 파업을 지지해 온 젊은간호사회도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열악한 근무, 가중된 근무환경, 감정노동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고 꼬집는 글을 올렸다.

야당에선 대통령의 글이 ‘분열의 언어’라고 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편 가르기 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누구를 적으로 돌릴 셈이냐”고 했다. 문 대통령 글에 언급된 가수 아이유의 팬 일부도 아이유가 지난 2월 대한의사협회에 방호복 등을 기부한 사실과 함께 “대통령께서 아이유의 선행을 높이 사주신 점에 대해서는 황공할 따름이오나 혹여나 아이유가 간호사분들에게만 기부한 것으로 오해하는 국민들이 있을 듯해 바로잡게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디시인사이드 아이유 갤러리에 올렸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국무총리 세종공관에서 시·도 의사회 회장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10명가량이 참석해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의사회 회장들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전임의를 고발해 더 자극하게 됐다”며 “정부가 (집단휴진 문제에) 좀 더 인내를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의대 증원 정책 중단, 의료인 처벌 불원(不願) 메시지 등을 언급하며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 의사회 회장이 설득에 나서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민욱·한영익·윤성민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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