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동선 알아서 추측 하란거냐" 엄마가 올린 분노의 청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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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작업 중인 서울 종묘 정전. 뉴스1

방역 작업 중인 서울 종묘 정전. 뉴스1

“코로나 확진자가 우리 동네 카페·마트를 다녀갔다는데, 도대체 어떤 카페·마트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2일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에 거주하는 A씨의 하소연이다. A씨는 가족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릴까 봐 종종 서울시청 웹페이지에서 서울 확진자 이동 경로를 확인한다. 이 웹페이지에 따르면 8월 30일 확진 판정을 받은 확진자가 A씨 동네의 병원·약국·음식점·백화점 등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가 방문한 장소의 상호는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 A씨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지만, 정작 확진자 동선만 보면 확진자와 거리를 둘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변서 확진자 잇따르자 "공개 범위 넓혀야" 요구 

코로나19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를 두고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감염병 확산 예방을 위해 정보를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생활 침해 방지를 위해 정보 공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코로나 확진자 정보 비공개 기준. 부천시청 캡쳐

코로나 확진자 정보 비공개 기준. 부천시청 캡쳐

감염병예방법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34조의 2에 따라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 경로 ▶이동수단 ▶접촉자 현황 등을 공개한다. 다만 정보 공개 범위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지나친 사생활 노출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월 9일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면서 인권침해 사례가 나타난다”며 “감염 환자 사생활이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세부적·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방역 당국은 3월 14일 확진자 동선 공개 지침을 개정했다. 나이·이름 일부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 대상에서 제외했다. 4월 12일에는 정보 공개 기간도 한정했다. 확진자가 방문·접촉한 지 2주가 지나면 관련 정보를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전환했다. 확진자가 방문한 업소에 손님이 줄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7월부턴 정보 공개 범위가 더욱 줄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성별·연령·국적·거주지·직장명(상호) 등 개인을 특정하는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후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확진자가 거주 중인 동 단위 정보만 공개한다. 구체적인 아파트 단지명이나 읍·면·동 등 확진자 방문지의 세부 주소는 공개하지 않는다. 식당 같은 다중이용시설은 매장명·층수도 비공개한다. 다만 보건소가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접촉자가 있을 경우에는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서울시가 공개한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 사례. 서울시청 캡쳐

서울시가 공개한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 사례. 서울시청 캡쳐

지자체 “감염병예방법 준수해 동선 공개”  

문제는 8월에만 5877명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코로나19가 급격히 재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14일부터 1일까지 일간 코로나19확진자수는 19일 연속 세자릿수 발생했다. 여기에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불분명 사례’ 비율(24%·1일 기준)까지 연일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면서, 확진자 동선 정보를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진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서울 서초구 양재동까지 장거리 출퇴근하는 A씨는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데, 코로나19 확진자가 어느 식당에 언제 갔는지 정확히 몰라 불안하다”며 “이러다가 n차 전파 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교회를 비롯해 식당·학원·운동시설 등 일상에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장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2일 하루에만 교회(15명)·봉사단체(15명)를 비롯해 음악학원(18명)·운동시설(7명)·지인모임(7명) 등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자칭 세종시 거주민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한 글. 청와대 캡쳐

자칭 세종시 거주민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한 글. 청와대 캡쳐

급기야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세종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라고 밝힌 한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8·15 광복절 집회로 지역사회 확진자가 갑자기 증가하는데, (확진자 동선을) 알아서들 추측하라는 식의 블라인드 비공개 동선이나 올려준다”며 “공개된 확진자 동선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는 글을 게재했다. 이글에는 2일 현재 2700여명이 동의했다.

이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는 감염병예방법을 준수해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확진자의 직장명은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만약 직장에서 불특정 다수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면 직장명도 공개한다”며 “역학조사 결과 대중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탄력적으로 정보 공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임시 휴점한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뉴스1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임시 휴점한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뉴스1

전문가, 감염병 차단·샤생활 보호 접점 찾아야 

개인 정보도 감염병 예방만큼이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라는 반박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의 세부 동선을 상세히 공개했던 지난 3월 전까지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 코로나19 확진자는 불륜·성매매자라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떠돌았다. 지난 2월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 집단감염 사태 발생 당시엔, 대구·경북 지역 방문자에게 신천지 교도라는 낙인을 찍는 경우도 있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한 장소가 공개될 경우 사회적 낙인이나 사생활 침해 등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감염병 차단과 개인정보 보호라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두 가지 가치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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