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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나선 중국 외교, “미국 주도 ‘범대서양 연맹’ 깨라”

중앙일보

입력

중국 외교가 미국의 거센 압박에 대처하기 위해 ‘투 트랙’ 전략에 나섰다. 우선은 이웃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다지는 주변 외교 공고화 전략이다. 두 번째는 이를 토대로 유럽 국가가 미국과 연대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외교다.

왕이 외교부장 8일간 유럽 5개국 순방에 이어 #양제츠 정치국 위원도 1~4일 유럽국가 찾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7~8월 유럽 6개국 돌며 #중국 공산당 반대하는 미국과 유럽이 힘 모아 #‘범대서양 연맹’ 구축 강조한 데 대한 반발 행보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지난달 22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회담을 마친 뒤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지난달 22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회담을 마친 뒤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주도하는 ‘범 대서양 연맹’이 출현해 중국을 포위하는 상황은 어떻게든 꼭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외교의 꼭짓점에 서 있는 투 톱의 최근 행보가 부쩍 바빠졌다.

시작은 중국 지도부의 여름철 휴가를 겸한 모임인 베이다이허(北帶河) 회의가 끝난 지난달 중순 이후다. 먼저 정치국 위원인 양제츠(楊潔篪) 중앙외사위원회판공실 주임이 지난달 19~22일 싱가포르와 한국을 방문했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은 1일부터 4일까지 미얀마, 스페인, 그리스 3개 국가 방문에 나섰다. 중국 외교가 미국의 압박에 맞서 이웃 국가와 유럽 국가에 공을 들이는 일환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은 1일부터 4일까지 미얀마, 스페인, 그리스 3개 국가 방문에 나섰다. 중국 외교가 미국의 압박에 맞서 이웃 국가와 유럽 국가에 공을 들이는 일환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비슷한 시기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중국에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베트남, 헝가리 등 4개국 외무장관을 만났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해외 순방에 나섰다.

목적지는 유럽 5개국. 이달 1일까지 8일 동안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독일을 찾았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전통적인 강국을 두루 방문했다.

유럽 순방에 나선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8일 프랑스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국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유럽 순방에 나선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8일 프랑스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국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왕이의 유럽 순방이 끝난 1일 이번에는 양제츠가 바통을 받아 미얀마를 필두로 다시 스페인과 그리스를 찾는 4일간의 순방 외교를 떠났다. 중국 외교의 실무를 관장하는 랭킹 1, 2위 인물이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움직이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고 한다.

홍콩 명보(明報)는 1일 이 같은 중국 외교의 방점은 유럽에 찍혀 있다고 분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최근 두 차례 걸쳐 유럽 6개국을 돌며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미국 주도의 범 대서양 연맹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한 데 따른 반발이라는 것이다.

유럽 순방에 나선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7일 노르웨이 총리 에르나 솔베르그와 코로나를 의식한 듯 멀리 떨어져서 가슴에 손을 얹는 방식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유럽 순방에 나선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7일 노르웨이 총리 에르나 솔베르그와 코로나를 의식한 듯 멀리 떨어져서 가슴에 손을 얹는 방식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폼페이오는 지난 7~8월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영국, 덴마크 등 6개국을 다니며 유럽 국가가 단결해 중국 공산당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펼쳤다. 화웨이(華爲) 등 중국 5G 기업이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도 했다.

폼페이오의 주장은 효과가 있어 체코의 밀로스 비르트르칠 상원의장이 대표단을 이끌고 지난달 30일부터 대만을 방문 중이다. 그는 1일 대만 입법원 연설에서 “나는 대만인”이라며 대만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대만을 방문중인 밀로스 비르트르칠 체코 상원의장이 1인 대만 입법원 연설에서 ’나는 대만인“이라며 중국 공산당에 맞선 대만 민주주의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AP=연합뉴스]

대만을 방문중인 밀로스 비르트르칠 체코 상원의장이 1인 대만 입법원 연설에서 ’나는 대만인“이라며 중국 공산당에 맞선 대만 민주주의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AP=연합뉴스]

1963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서베를린을 방문해 “나는 베를린인이다”라고 선언해 공산주의 소련에 맞선 서베를린 시민에 힘을 실어준 것을 모방한 것이다. 이는 친중 행보를 보이는 체코 대통령 밀로시 제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양제츠와 왕이의 이번 유럽 방문 대상국에는 폼페이오가 찾았던 국가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유럽이 미·중 대결의 ‘새로운 전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유럽을 놓칠 수 없는 입장이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5일 이탈리아의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을 만나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5일 이탈리아의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을 만나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유럽연합의 총생산은 18조 달러에 달한다. 21조 달러의 미국의 뒤를 바짝 쫓으며 14조 달러인 중국보다 4조 달러나 많다.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유럽에 의한 범 대서양 연맹이 결성되면 중국의 고통은 크다.

이 때문에 이번 왕이에 이은 양제츠의 유럽 순방 모두 유럽 각국에 중국의 매력을 보다 많이 선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경제적 당근을 제시하며 유럽이 중국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미국 편에 서지는 말라는 작전을 쓴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6일 네덜란드 방문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6일 네덜란드 방문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홍콩의 국가보안법 통과 등으로 중국의 이미지가 유럽에서도 많이 실추돼 있어 중국 외교의 쌍두마차인 양제츠-왕이의 잇단 유럽 출격이 과연 어느 정도 실제적인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하이코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1일 베를린에서 왕이를 만나 홍콩보안법 폐지를 요구했다. 또 회담장 밖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홍콩보안법 폐지와 위구르족 탄압 반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중국 외교의 험난한 유럽 끌어안기 상황을 시사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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