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에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는 데 21조원 이상을 쏟아붓는다. 보건·복지·고용 분야에는 200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튼실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민간의 투자 의욕을 북돋우는 근본적인 경제 개혁이 없으면 숫자놀음식 돈 붓기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함께 나온다.
일자리 예산은 20% 늘어 31조원 #공공일자리 비판 많아도 꿈쩍안해 #행정수도 논란 시끄러웠지만 #관련 예산은 국회 분원 10억뿐
1일 정부가 확정한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같은 디지털 뉴딜 사업에 7조9000억원을 투자한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공공시설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등 그린 뉴딜 사업에는 8조원을 지원한다.
홍남기(사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판 뉴딜에) 국비 기준으로 21조3000억원, 지방비 등을 포함하면 32조5000억원을 투자해 36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보면 한국형 뉴딜에 대한 투자 규모는 160조원(국비 114조1000억원 포함)으로 늘어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판 뉴딜 사업이라고 하지만 그간의 ‘알바(아르바이트)’ 일자리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며 “규제혁신과 같이 민간 투자를 늘리고 기업이 적극적인 활동에 나설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기존 정책의 실패를 답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고용 분야의 내년 예산은 올해 본예산보다 10.7% 늘어난 199조9000억원을 배정했다. 4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이다. 내년 전체 예산의 36%에 이른다. 이 중 일자리 예산은 30조6000억원이다. 올해보다 20% 늘었다. 노인·장애인 등에게는 공공 분야 일자리 103만 개를 제공한다. 민간 분야에선 청년 디지털 일자리 창출, 창업 지원 등을 통해 57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
공공 일자리 정책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지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2017년부터 내년까지 5년간 정부가 일자리에 쏟아붓기로 한 돈은 110조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고용 성적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실업자 수는 113만8000명, 실업률은 4%를 기록했다. 7월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실업률이 가장 높았다.
행정수도 이전 이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논의가 중단되면서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내년 행정수도 이전 관련 예산은 올해와 같은 10억원이 전부다. 국회 세종분원 의사당 설계비 명목이다. 내년 국방예산으로는 52조9000억원을 편성했다. 2017년(40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12조원 넘게 증가한다. 연평균 7% 수준의 증가세다. 이런 추세를 이어갈 경우 수년 내에 일본의 방위비 예산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교육예산은 71조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2.2% 줄었다. 통일부는 남북 보건의료 협력 예산을 370억원 증액하는 등 내년 남북협력기금을 올해보다 3.1% 늘어난 1조24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서울=박용한·김홍범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