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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구가 원인일까···아파트 한 라인 5개층 집단감염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층 20세대 아파트서 한 라인서만 5가구 감염

26일 서울 은평구 보건소 앞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체 채취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연합뉴스

26일 서울 은평구 보건소 앞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체 채취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연합뉴스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아파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확산 경로가 환기구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코로나19 감염경로가 환기구로 추정된다는 구청의 입장과는 달리 서울시청과 전문가 등은 “가능성이 희박한 주장”이라는 견해를 내놓아서다.

26일 오후 7시 기준 8명 집단감염 #“20여호 중 한 호 라인에서만 발생” #엘리베이터 통한 감염 가능성도 #당국 “이른 판단, 더 조사해봐야” #아파트 확진자 직장서도 집단감염

 구로구는 26일 오후 7시 기준 관내 한 아파트에서 8명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 아파트는 최고 15층으로 1988년에 지어졌다. 주목할 점은 복도식인 이 아파트 같은 동 5개 층에서 각층에 1가구씩 5가구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점이다. 확진자가 나온 집은 한층 20여 가구 중 모두 다른 층 같은 라인이었다. 예컨대 A동 101호·201호·301호 식으로, 저층 3개 층과 고층 2개 층 다섯 집에서 집단감염이 나왔다.

구로구 아파트 8명 확진 미스터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로구 아파트 8명 확진 미스터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로구 관계자는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해 환기구 환경 검체검사와 전면 소독을 했다”고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하지만 함께 역학조사를 한 서울시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같은 라인에서만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볼 때 엘리베이터나 공조기 등으로 감염경로를 추정한다”고 말했다. 확진자들끼리 밀접 접촉한 정황은 현재까지 없다고 한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겠지만 한층에 20여 세대가 거주하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특정 호수 라인에서만 감염이 발생했기에 환기구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딘가 연결되지 않았다면 감염될 수 없는 구조라 화장실 환기구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로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감염 상황. [사진 홈페이지 캡처]

구로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감염 상황. [사진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들은 “환기구를 통한 감염 사례가 이제까지 국내에 없었다”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을 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03년 홍콩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할 때 아파트 화장실 환풍구로 바이러스가 전파돼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된 적 있지만, 국내는 홍콩 같은 환풍구 연결 시스템이 아니어서 그럴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 감염자의 대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는데, 배변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에어로졸 형태로 환풍구를 통해 여러 가구를 감염시킨 사례로 나타나 당시 학계의 주목을 모은 적이 있다는 견해다.

 김 교수는 “과거 엘리베이터를 통한 감염 사례가 있기 때문에 다각적 측면에서 감염 경로를 파악해야 한다”며 “환기구를 공유하는지는 아파트 구조를 분석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역시 “환기구로 퍼지기는 쉽지 않다”며 “다른 접촉이 있는지 조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으로 확산, 초비상이 걸린 26일 대전 서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시민들을 검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으로 확산, 초비상이 걸린 26일 대전 서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시민들을 검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보건당국 역시 환기구를 통한 집단감염 가능성을 낮게 봤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그렇게 단정하려면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며 “환기구는 몇 가지 가능성 있는 경로 중 하나일 뿐 이를 원인으로 미리 추정해버리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감염 가능성과 관련해 “공기처럼 떠다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진자가 만진 데를 또 만지면 감염 가능성이 있다”며 “조사하다 보면 전혀 다른 경로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23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24일 이 확진자의 남편인 A씨와 자녀가 확진됐다. 이후 5명이 추가로 양성 판정을 받아 누적 확진자는 8명으로 늘었다. 오후 5시 기준 아파트 주민 430명이 검사받아 2명 양성, 244명 음성 판정이 나왔다. 나머지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확진자 2명은 다른 구에서 검사받았다.

 이날 A씨의 직장인 금천구 한 공장에서도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 금천구는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공장 직원 19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8일~19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직장에 머물렀으며 직장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20일 증상이 나타났다.

 A씨와 함께 식사한 직원 29명을 지난 25일 검사한 결과 이 가운데 19명이 확진됐다. 금천구는 이날 오후까지 이 공장 직원과 지하 1층~지상 4층 공장 건물에 있는 다른 업체 직원까지 총 117명을 추가 검사했다.

 구로구 관계자는 “A씨의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 접촉자는 전원 음성이 나왔다”며 “금천구 공장과 구로구 아파트의 감염 선후 관계와 감염경로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경·김현예·허정원·황수연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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