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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사전

수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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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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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칼을 대는 것. 그러나 몸 바로 위에서 걱정스럽게 몸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자칫 칼에 스칠 수도 있다. 마음이 다친다면 몸이 아문다 해도 수술은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의사는 좋은 칼보다 먼저 좋은 입을 가져야 한다. 안심을 주는 입. 믿음을 주는 입.

『사람사전』은 ‘수술’을 이렇게 풀었다. 우리는 의사의 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니 간섭할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움직여줄 거라는 기대 또는 믿음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의사의 입이 하는 일은 알아듣는다. 만약 우리가 의사에 실망했다면 그건 칼보다 입일 것이다.

사람사전 8/19

사람사전 8/19

그런데 의사만 의사일까. 나도 의사다. 누군가 내게 일을 맡긴다. 그는 내 책을 읽었다고 한다. 책에 적힌 것처럼 새로운 발상을 받아보고 싶다고 한다. 내 칼에 자신의 기업을 맡기겠다는 뜻이다. 이때 나는, 이론과 실제가 같을 수 있나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위축도 안 되고 겸손도 안 된다.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씩 웃어줘야 한다. 자신감이다. 일을 맡기는 사람에게 믿음과 기대를 주는 것이 일의 시작이다.

우리 모두는 의사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마음을 심어주는 선생님이라는 의사. 손님을 안전하게 목적지에 모셔다주는 택시운전사라는 의사.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밥상 위에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놓아주는 농부라는 의사.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입이다. 칼이 아니라 입이다. 나는 내 환자에게 안심을 주는 입을 가졌는가. 믿음을 주는 입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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