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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의 변명 "공화·민정 간건 생계 때문…백선엽은 사형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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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원웅 광복회장(오른쪽)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원웅 광복회장(오른쪽)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절 경축식에서 거침없는 친일 청산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원웅 대한광복회장이 17일 K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공화당과 민정당에 몸담았던 자신의 이력에 대해 변호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화당에 공채로 합격했고, 전두환 시절 민정당에서 일했는데 친일 청산을 주장할 수 있냐는 비판에 그는 '생계'를 이유로 내세웠다.

이날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김 회장은 "대학을 졸업 후에 젊은 나이에 공화당 사무처 직원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해 거기서 일을 했다. 그리고 민정당으로 이어져 두 정권에서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어 3당 통합으로 민자당이 탄생했던 1992년을 거론하며 "40대 초에 3당 야합할 때 제정구·이부영·이철·유인태·노무현·김정길 동지 등 40대 동지들과 함께 3당에 합류 안 하고 꼬마민주당을 만들었다"며 "그 이후 한 번도 그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노력해왔다"로 말했다. 그는 "이번에 친일청산을 강도 있게 주장하는 이유도 생계형이긴 했지만, 과거 공화당에 들어간 원죄가 있기 때문에 더 원칙에 충실해지려는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신헌법이 만들어진 1972년 민주공화당 공채로 당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 때는 민정당에서 일했다. 노태우 정권 때는 민주당 후보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2000년 한나라당 당적으로 국회의원에 뽑혔고,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배지를 달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9년 광복회 회장이 됐다. 이처럼 여야를 오가는 정치 이력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김원웅 광복회장. 뉴시스

김원웅 광복회장. 뉴시스

그러나 그는 이른바 꼬마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된 시점을 거론하며 "제 이름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사무실에서 남 도와주는 사무직원이다. 윗사람들 약속 잡으라고 하면 잡고, 행사하는 데에 물품 준비하라면 하는 일이다"라고 자신의 행적을 정당화했다.

한편 '친일파 파묘' 등을 주장하는 내용의 광복절 경축사로 '진영 갈등'을 재점화한 그는 이날도 고(故) 백선엽 장군, 작곡가 안익태,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는 "6.25가 난 날과 다음 날 백 장군이 이끌던 육군 1사단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그래서 1사단에 있던 장교나 군인이 도피했다. 그것만 가지고도 사형감"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법을 만들 때 5번이나 만들면 안 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과장된 면이 많다"며 해방 이후에는 미국에 빌붙어 미국 국가이익을 챙겼다. 건국 대통령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부끄러운 분"이라고 비판했다.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도 혹평하면서 교체를 주장했다. 그는 "불가리아 민요를 60% 넘게 베꼈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고,  "국가를 한 번도 안 바꾼 나라는 한국과 일본인데, 이런 것까지 일본을 따라가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의 묘를 이장하지 않을 경우 해당 묘소 앞에 친일 행적을 알리는 비를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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