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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의 북한 말투가 불편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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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사회1팀 기자

박태인 사회1팀 기자

귀를 의심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말이 됩네까”라며 태영호(사진) 미래통합당 의원의 북한 말투를 따라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진행자가 “하하하” 웃으며 “됩네까”라고 맞장구를 쳤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박 의원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태 의원의 ‘주체사상 전향 질문’을 색깔론이라 비판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족을 덧붙였다. “제가 태영호 의원의 목청을 처음 들었다”며 “말이 됩네까” 발언이 나왔다. 태 의원의 질문보다 그가 북한 출신임을 비하하는 조롱처럼 들렸다. 미국에 살 때 내 발음을 비꼬던 백인들의 비웃음 같았다. 박 의원은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임차인 연설’을 비판할 때도 “눈 부라리지 않고 이상한 억양 아닌”란 말을 더했다. 논란이 일자 “특정 지역 사투리를 빗댄 표현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상한 억양이란 단어에서 다시 “말이 됩네까”가 떠올랐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박 의원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벼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억양 집착은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가장 흔한 차별과 맞닿아 있다.

서울의 한 탈북자 대안학교 교사는 “한국에 사는 많은 탈북자 아이들은 일부러 지방 사투리를 배운다”며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 말투를 숨기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너 북한에서 왔구나?”라는 질문에 “아니요, 강원도 출신입니다”는 대답은 모범 답안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여전한 차별의 꼬리표다. 탈북자 대안학교는 집값을 떨어뜨리는 혐오시설로 여긴다. 대안학교 교사는 “태영호 의원도 이런 조롱을 받는다면, 다른 탈북자는 말할 것도 없지 않느냐”고 털어놨다.

차별을 연구하는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는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선량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을 할 땐 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의원도 차별을 차별이라 몰랐던 ‘선량한 차별주의자’ 였을까.

2018년에만 남북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했던 정권이다. 그 중진 의원이 차별임을 알면서도 탈북자를 조롱하는 ‘불량한 차별주의자’라면 너무 서글픈 일이다. 인권 연구자인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유력 정치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국민에게 중요한 시그널이 된다”고 지적했다.

태영호 의원은 박 의원의 발언을 묻는 기자에게 “습관처럼 나오는 제 북한 말투를 조롱하는 건 민족 분단의 아픔을 건드리는 행위”라 답했다. 이어 “탈북자를 조롱하는 여당이 남북 화해를 말하는 건 모순 아니냐”고 덧붙였다.

박태인 사회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