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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나눔의 집 비리 확인됐는데, 정의연 수사는 감감무소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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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후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이 지난 1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눔의 집 측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후원금 88억원 중 할머니들에겐 2억원만 써 #위안부 할머니 후원 비리 성역 없이 수사해야

나눔의 집은 각종 단체에 공문까지 보내 5년간 88억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후원한 단체와 개인들은 신산한 삶을 살아온 피해 할머니들의 마지막 삶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눔의 집 법인은 이 중 2.3%에 불과한 2억원만 할머니들의 거주 시설로 보냈다. 그 돈마저 대부분 시설운영비로 지출됐다. 나머지 돈은 법인 자산 불리는 데 쓰였다. 토지 매입, 생활관 증축, 추모공원 조성 등에 26억원을 썼다. 50억원 가까운 돈은 요양원 건립 명목으로 비축해 뒀다고 한다.

나눔의 집은 조계종이 주도하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불교인권위에서 만든 시설이다. 승려인 법인 이사들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후원금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더 많이 받아 요양원을 짓자”고 발언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후원금 사용 내역을 보면 재단 측이 할머니들을 수익사업의 수단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거동도 불편한 할머니들에게 “갖다 버린다” “혼나 봐야 한다”는 등 폭언을 일삼았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후원금 사용 내역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고, 국가지정기록물이나 아이들이 보낸 응원 편지를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등 함께 밝혀진 난맥상은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이보다 앞서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와 언론의 취재를 통해 정의기억연대와 이 단체가 운영하는 마포 쉼터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개인 계좌로 후원금을 모으고, 상당 규모의 후원금 사용 내역이 누락되는 등 회계 처리는 엉망이었다. 실제 할머니들에게 쓴 돈은 얼마 안 되고, 단체 자산을 불리거나 비슷한 성향의 다른 단체 후원에 돈을 펑펑 쓰는 등 나눔의 집 비리와 판박이였다.

나눔의 집의 경우 강제 조사권이 없는 민관합동위원회가 맡아 조사했다. 그런데도 지난달 6일 시작해 한 달 남짓 만에 모든 조사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 권한을 가진 서울서부지검이 맡은 정의연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의혹의 핵심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소환조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장영수 서울서부지검장은 대구고검장으로, 고경순 차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정부는 수사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검찰은 이에 부응해 수사를 미루며 자신의 영달을 꾀한 셈이다. 이러고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와 고통을 운운할 수 있는지, 일본을 향해 도덕적 정당성을 논할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