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제한 묶이기 전에…” 축사 무더기 허가, 청도 주민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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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북 청도군 금천면 동곡리 한 축사. 최근 건축허가를 받아 증축된 곳이다. 김정석 기자

3일 경북 청도군 금천면 동곡리 한 축사. 최근 건축허가를 받아 증축된 곳이다. 김정석 기자

3일 오후 경북 청도군 금천면 동곡리.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서자 전형적인 농촌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논밭 사이로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정자에 주민들이 모여 앉아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350여가구 동곡리 마을만 연이어 축사 4곳 허가 #현행 조례대로면 제한구역 걸려 허가 못받는 곳 #주민들 반발…청도군 “기존에 불편민원 없었다”

 마을 내 주택이 모여있는 곳에서 차량으로 1분여 거리에는 최근 축사 한 동이 세워졌다. 아직은 텅 빈 상태지만 조만간 소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축사는 주민들이 모여 있는 정자에서도 내려다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새로 지은 축사 옆으로는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축사에서 소 수십 마리가 여물을 뜯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50여 가구가 사는 동곡리 마을에는 이 축사를 비롯해 1년 사이에 축사 네 곳이 연달아 들어서거나 건축허가를 앞둔 상태다. 네 군데 모두 반경 1㎞ 내에 밀집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기존에 운영되던 축사까지 합치면 마을 주변에만 축사가 10여 곳에 이른다.

 한적한 작은 마을에서 축사 4곳이 잇따라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올해 ‘가축사육 제한지역’이 대폭 늘어나는 조치가 단행된 게 주된 원인이다. 축산업자가 축사를 세우려는 땅이 가축사육 제한지역으로 묶이기 전에 건물을 세우려고 하면서다. 동곡리를 비롯해 청도군 전역에 유사한 현상이 이어졌다.

 지난 1월 20일 개정 공표된 ‘청도군 가축사육 제한에 관한 조례’는 주거밀집지역 주택 기준이 ‘10호 이상’에서 ‘5호 이상’으로 강화됐다. 소 축사를 지을 수 없는 거리 제한도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 ‘150m 이내’에서 ‘300m 이내’로 확대됐다. 해당 조례 개정에 따라 청도에서 가축사육 제한지역으로 묶인 면적은 약 354㎢에서 578㎢로 확대됐다.

지난 5월 공고된 청도 가축사육 제한지역. 제한지역 면적이 약 354㎢에서 578㎢로 확대됐다. [사진 청도군]

지난 5월 공고된 청도 가축사육 제한지역. 제한지역 면적이 약 354㎢에서 578㎢로 확대됐다. [사진 청도군]

 이 조례는 가축사육 제한지역 지형도면이 공고된 5월부터 실제 효력이 발생됐다. 동곡마을 내 신축 축사 세 곳 중 두 곳은 지난해 건축허가를 받았지만, 한 곳은 조례가 개정 공표되고 지형도면 공고가 이뤄지기 전인 올해 1월 29일에 건축허가를 받았다. 조례의 효력이 발생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축사를 지을 수 있는 건축허가를 받은 셈이다. 현재 동곡리에 위치한 축사들은 현행 조례대로라면 가축사육 제한지역에 걸려 건축허가를 받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주민들은 군청이 잇따라 축사 건축허가를 내준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축사에서 내뿜는 악취와 오물, 소음 등에 따른 불편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이들은 최근 청도군청 앞에서 진행하려던 집회가 집회 미신고를 이유로 무산되자 담당 부서를 찾아가 항의했다.

 이들은 “면 소재지에 다수의 축사가 인·허가 된다면 악취, 오염원 배출 등 환경오염 우려가 커지고 해충 발생 빈도가 높아져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토지거래 또한 원만하지 못하게 돼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담당 부서에 진정서도 냈다.

 주민들은 “축사 인·허가 서류 요건을 갖췄다고 해도 주민들의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서류상 요건만으로 축사 시설이 지어진다면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주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켜야 할 행정당국의 직무유기로밖에 볼 수 없다”며 “현재 진행 또는 예정인 축사 허가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20일 개정 공표된 '청도군 가축사육 제한에 관한 조례'에서 신구조문 대조표. [사진 청도군]

지난 1월 20일 개정 공표된 '청도군 가축사육 제한에 관한 조례'에서 신구조문 대조표. [사진 청도군]

 그러면서 건축허가상 결격 사유가 없음에도 주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축사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경북 의성군 등 다른 지역 사례를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도군 관계자는 “건축허가 후 공사가 진행되던 시기는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동곡리 마을에서 축사로 인한 불편 민원이 군청에 들어온 적은 없다”며 “주민들의 불편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여러 방면으로 조율할 수 있었겠지만, 골조 공사까지 끝난 시점에 축사 운영을 중단시키라고 요구해 곤란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축사 건축허가 요건을 갖췄더라도 주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인·허가를 해주지 않은 다른 지역 사례를 잘 알고 있고 청도군 역시 그런 사례가 다수 있다”며 “준공된 축사를 철거하는 등의 조치는 어렵더라도 환경오염 요인을 줄이는 등 다른 방안의 조율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도=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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