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김멜라 『적어도 두 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적어도 두 번

적어도 두 번

미스터X는 나에게 성별을 결정하기 어려우면 자기처럼 뚱보가 되라고 했다. 살이 찌면 남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뚱뚱한 살만 본다고. 하지만 난 살이 찌면 축구할 때 빨리 달릴 수 없어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미스터X는 로또에 도전하라고 했다. 여자든 남자든 중요한 건 돈이 많아야 하고 돈이 많으면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따지지 않고 부러워한다고 했다. 나는 미스터X의 조언대로 로또에 뛰어들었고 내 정체성 숫자를 찍었다. … 미래엔 인간보다 로봇이 많아질 텐데 그때가 되면 난 비정상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될 수 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

김멜라 『적어도 두 번』

‘퀴어’는 최근 한국 문학의 주요 키워드다.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정상·비정상 이분법에 반기를 들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구호 아래 ‘일상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체성 정치’의 일환이다. 그중에서도 김멜라는 단연 압도적이다. 매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글쓰기로, 최근 읽은 퀴어 문학 중 최고다. 인용문은 소설집 『적어도 두 번』 중 ‘호르몬을 춰줘요’에 나온다. “나는 등번호 9번에 윙포워드 … 그리고 IS다”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IS(intersex·間性)가 소재다. 소설가 구병모는 “한번 닿으면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얼음의 문장과 마취제도 없이 몸속을 휘젓는 그로테스크의 칼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추천사를 썼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