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임시직” VS “정규직 숨통”…서울시, 청년 5000명 뽑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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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청년 희망일자리 사업’을 통해 총 5000명을 채용키로 했다. 이에 대해 청년층과 전문가들은 “일회성 복지에 가까운 임시 일자리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실효성 있는 일자리를 만들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속 청년 희망일자리 사업 논란

5000개 중 74%가 '마스크 착용 지도' 

2일 울산 동구청 앞 광장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희망일자리 채용박람회'가 개최된 가운데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2일 울산 동구청 앞 광장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희망일자리 채용박람회'가 개최된 가운데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희망 일자리 사업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 5000개 중 74.3%(3716명)가 ‘학교생활지원’에 투입된다. 학교생활지원은 일선 학교의 방역과 원격수업 등 학생들을 지도하거나 돕는 내용이다. 세부적으로는 마스크 착용지도와 발열검사, 학교건물 내외부 소독 등의 활동 등이다.

 서울시 사회복지관이나 자치구 복지관에서 방역·행정업무를 보조하는 ‘청년매니저 희망일자리 사업’도 있다. 총 162명을 뽑는다. 올해 말까지 4~5개월간 주 25~40시간을 근무하는 형태다. 4대 보험을 포함해 시간당 최저임금(8590원)을 받게 되며 활동 내용은 학교생활지원과 유사하다. 지역별로 설치된 청년센터 등 방역이나 공간정리, 정책자료 작성 및 배포 등을 지원한다. 물품·문서관리·회계 등 행정지원 업무도 포함된다.

서울시, “청년 지지 기반 되길 희망”

2021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희망 일자리는 대부분 학생들에게 마스크 착용 지도 등을 담당하는 내용이다. [뉴시스]

2021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희망 일자리는 대부분 학생들에게 마스크 착용 지도 등을 담당하는 내용이다. [뉴시스]

 서울시는 코로나19로 취업 환경이 열악해진 만큼 이 사업이 청년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희망일자리 사업이 지금 바로 일하고 싶은 청년들의 삶의 지지기반이 돼 다시 시작하는 작은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장 비중이 큰 학교생활지원 역시 방역 환경이 엄격해지는 학교 운영에 변화가 생긴 만큼 이를 조기에 안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정작 수혜자인 청년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해당 일자리 대부분 단순업무인 데다 취저임금을 적용받는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 ‘땜질식 처방’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취업 준비생 최모(29·여)씨는 “업무 대부분이 서류관리 등 너무 단순한 데다 근무 기간도 4~5개월로 짧아 향후 취업 때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용돈 벌이로 생각한다 해도 최저임금에 하루 5~8시간 근무여서 메리트가 크지 않다”며 “오히려 취업 준비 기간만 길어질 수 있어 그 시간에 다른 경험·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층, “단순업무·최저임금, 도움 안돼”

'코로나19 극복 부산희망일자리사업' 참가신청장이 마련된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로비를 찾은 시민들이 공공일자리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극복 부산희망일자리사업' 참가신청장이 마련된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로비를 찾은 시민들이 공공일자리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뉴시스]

 오랜 취업 준비 끝에 지난해 취업한 김모(32)씨도 “결국 세금을 투입할 거면 규모가 작더라도 정규직 채용을 지원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과거 청년인턴으로 일할 당시 업무를 주지 않아 근무 시간에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문서 복사, 자료 입력 같은 단순 업무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채용한 기관 입장에서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아 경험을 쌓는데는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다.

224억원 市예산, “창업·취업교육에 써야”

 반면 상당수 청년들이 꼽은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보는 취업 준비생도 있었다. 이직을 위해 취업시장에 다시 나온 유모(33)씨는 “어차피 정부가 일자리를 주기로 결정한 사안인데 일까지 쉬우면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는 더 적합하지 않겠느냐”며 “기회가 되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희망 일자리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은 총 224억원이다. 희망일자리 사업에는 ▶자치구별로 방역지원·행정보조요원 등을 채용하는 ‘자치구 청년 희망일자리’(812명) ▶정보·통신(IT)분야 직무기회를 제공하는 ‘청년 디지털 소셜임팩트 희망일자리’(210명) ▶청년들이 공공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기주도형 희망일자리’(100명) 등 분야도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일회성 복지에 가까운 임시 일자리보다 향후 취업에 도움을 주거나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과)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쉽지 않은 재학생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과는 달리 졸업 후 취업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자리”라며 “장기적으로 창업지원이나기업의 정규직 고용 지원 등에 예산을 투입하는 편이 실효성이 클 것”이라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부)는 “희망 일자리 사업 예산을 취업 교육 지원 등에 대체 투입할 필요가 있다”며 “임시 일자리로 인한 고용지표 개선 등 '착시효과'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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