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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떼고 포 떼고…집 공급 확대 ‘강한 시그널’ 없으면 더 혼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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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호 03면

길 잃은 부동산 정책

정부가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에서 그린벨트를 제외키로 하면서 벌써부터 차·포 다 빠진 빈껍데기 공급 대책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택 공급을 조율할 컨트롤타워조차 보이지 않는다. 상황을 총괄해야 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잇따른 헛발질로 경질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 3년 간 22번 대책을 쏟아내고도 집값·전셋값을 잡기는커녕 되레 시장을 불안하게 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주무부처의 장관이 경질설에 휩쓸린 마당에 주택 공급 대책이라고 제대로 나오겠느냐”고 우려했다.

22번 헛발질 국토부 신뢰 바닥 #그린벨트 두고 당정청 우왕좌왕 #문 정부 집권 초부터 겹겹이 규제 #재건축 활성화 나설 가능성 희박 #역세권 고밀개발은 주택 수 늘지만 #도심 미관 해치고 교통난 가중 단점

이번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의 핵심은 3기 신도시가 입주하기 전에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주택을 공급하느냐다. 입주까지 이어지진 않더라도 최소한 주택시장에 강력한 ‘공급 시그널’을 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공급 대신 다주택자 잡기에 올인한 결과 최근 집값, 전셋값이 무섭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를 개발하고 있지만, 입주 때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의 그린벨트 해제는 최상의 카드였다. 비교적 빨리 ‘신도시급’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고, 도심 접근성 면에서도 3기 신도시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2일 “공급을 늘리라”는 주문을 하자마자 정부와 여당 안팎에선 서울 그린벨트 해제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그린벨트를 두고 당정청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유력 후보지 주변엔 투기꾼이 몰려 땅값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만 낳았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서 해제하지 않기로 선을 그은 뒤에야 정리됐다. 그린벨트 다음으로 파괴력을 갖춘 공급 카드는 재건축 활성화다.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서울시가 참여하는 주택공급방안TF팀 회의에서도 재건축 활성화가 주요 안건으로 올라왔다. 21일 열린 주택공급방안TF팀 2차 회의에서 서울시는 잠실 주공5단지, 여의도 시범, 압구정 현대 등 구체적인 단지를 거론하며 재건축 행정절차를 진행하자고 건의했다. 3930가구짜리 잠실 주공5단지를 재건축하면 6500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 강남구 압구정·대치동 일대 재건축 단지를 재건축하면 총 5만여 가구를 한꺼번에 시장에 풀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하지만 재건축 카드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주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단지 인센티브를 준다고 재건축이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재건축을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2년 실거주 의무화 등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강화한 겹겹의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그런데 ‘재건축 규제’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다. 이걸 풀겠다는 건 정책 기조를 바꾸겠다는 의미여서 되레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도 “재건축을 추진하더라도 당장에 공급이 이뤄지는 것은 아닌데, 인근 집값만 더 자극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차 떼고 포를 떼고 나면 TF팀 논의 테이블엔 빈 상가·오피스를 주택으로 리모델링 하거나, 역세권 고밀(층수를 올려 가구 수를 늘리는 것)개발 정도만 남는다. 상가·오피스는 기본적으로 상업지역에 있기 때문에 초·중·고나 녹지가 부족해 신혼부부·청년 등 자녀가 없는 청년층 외에는 거주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차난 등 주거 쾌적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역세권 고밀개발은 주택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도심 미관을 해치고 교통난을 가중할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역세권 또한 상업지역이어서 내 집 마련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서울 380여 곳의 역세권을 고밀개발하거나 금천·구로·영등포 등 준공업지역을 고밀개발하면 공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릉 골프장은 그나마 1만 가구 정도를 공급할 수 있는 땅이다. 기대를 모았던 태릉 골프장과 육군사관학교 부지 통개발은 대책에서 제외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3일 “육사 부지에 대해선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육사 부지까지 묶어 개발하면 부지 면적이 150만㎡까지 늘어나 2만 가구 이상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태릉 골프장은 83만㎡ 규모로 도심 접근성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이 일대가 그린벨트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그린벨트는 보존하자고 한 만큼 시장에선 수요가 몰리고 있는 강남은 풀지 않고 강북 그린벨트만 풀어 변죽만 울리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태릉 골프장 외에 잠실·탄천 유수지 행복주택 시범지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 공공기관이나 국책연구기관 부지 등이 신규 주택 부지로 거론되고 있는데, 산발적인 소규모 땅이어서 공급 효과를 극대화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도심의 낡은 공공임대주택을 고층으로 재건축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이미 2018년 주택 공급 대책에 포함돼 진행 중인 사안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엔 사실상 주택을 공급할 택지가 없는데 그린벨트나 재건축을 그대로 두고 다른 방안을 찾다보니 당정청이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두달여 전인 5월 6일 주택 공급 대책에서 서울 7만 가구 공급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신규 택지 확보를 통한 공급은 용산역 철도정비창 등 18곳 1만5000가구에 불과했다. 이때 3곳 2000가구는 구체적인 이름도 나오지 않았다. 나머지 5만5000가구는 공공재개발·재건축이나 소규모 재건축 활성화 등 제도 개선을 통한 공급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목표였고 희망사항이었다. 지난해 12·16 대책 이후 6개월 간 땅을 긁어모아 5·6 대책에서 발표한 것이 1만5000가구인데, 재차 두달여 만에 다른 택지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시중은행의 부동산 담당 프라이빗뱅커는 “주택 공급 의지가 있다면 청와대든 총리는 확실히 중심을 잡고 그린벨트 해제 등을 밀어 붙였어야 하는데 컨트롤타워가 없다보니 시작부터 꼬인 것”이라며 “이번에도 획기적인 주택 공급 대책이 나오긴 힘들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지분적립형…‘반값 아파트’ 아이디어들

정부가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엔 분양가가 시세의 절반 수준도 안 되는 이른바 ‘반값 아파트’가 대거 포함될 전망이다. 땅은 빼고 건물만 분양하거나, 수십 년간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낮춰주자는 취지다.

대표적인 반값 아파트는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지구에 들였던 ‘토지임대부’ 아파트다. 토지임대부는 토지는 국가나 공기업 등 사업시행자가 보유하고 건물만 임대하거나 분양하는 형태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부터 오는 2022년까지 ‘사회주택’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와 고양·세종시 등지에 매년 토지임대부 아파트를 2000가구 이상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환매조건부’ 아파트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 아파트는 공공택지 아파트를 분양받은 소유자가 이를 매각할 때 적정 이율만 곱해 공공기관에 매각하는 조건을 달고 분양하는 아파트다.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없어 임대주택과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는 ‘지분적립형’ 모델을 제안했다. 지분적립형은 서울시 산하 SH공사 등 공공기관이 주택을 분양할 때 지분 100%를 분양하는 게 아니라 40%만 분양하는 형태다. 나머지 지분은 아파트에 살면서 20~30년에 걸쳐 추가로 매입하면 된다.

지분적립형 아파트가 실제로 나온다면 분양자는 임대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공공 보유 지분에 해당하는 금융비용(이자) 정도를 내는 방식이 유력하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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