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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신발 투척, 부시는 "이런 게 자유국가" 문대통령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 남성이 개원 연설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운동화를 집어던진 후 달려가다가 제지당하고 있다. 뉴스1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 남성이 개원 연설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운동화를 집어던진 후 달려가다가 제지당하고 있다. 뉴스1

형법상 '국가원수모독죄'가 사라진 상황에서 대통령에 대한 항의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발을 벗어 던진 50대 남성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국가원수(대통령) 모독 행위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정창옥(57)씨에 대해 “사안이 매우 중하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정씨에게 공무집행방해와 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오후 3시 20분쯤 제21대 국회 개원 연설을 마친 뒤 여야 대표와 환담을 하고 국회 본관 2층 현관을 나섰다. 당시 정씨는 본관 아래 오른쪽 계단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던 문 대통령을 향해 본인이 신고 있던 왼쪽 신발을 벗어 던졌다. 정씨가 던진 신발은 문 대통령 몇m 옆에 떨어졌다.

정씨는 현장에 있던 경호원들이 제압하려 하자 “가짜평화 위선자 문재인은 당장 자유대한민국을 떠나라”고 외쳤다. 문 대통령은 레드카펫 위에서 고성을 지르는 정씨를 바라봤다. 돌발행동을 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정씨는 “(문 대통령에게) 치욕스러움을 느끼게 하려고 했다”고 답했다. 경찰은 정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경찰서로 연행했다.

경찰이 김씨에게 적용한 혐의를 두고 과잉 대응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사건의 본질과 다른 죄명을 적용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측면에서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회의 담장을 허물자며 ‘열린 국회’를 강조하는 마당에 국회에 들어온 데 대해 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한 경찰의 발상도 코미디”라며 “부시 전 대통령에게 배우라”고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8년 12월 14일(현지시간) 방문 중인 이라크에서 현지 기자가 기습적으로 던진 신발을 고개 숙여 피하고 있다. ①~③번 사진은 부시가 첫 번째 신발을 피하는 장면. ④번은 알자이디가 두 번째 신발을 던지는 모습. [바그다드 A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8년 12월 14일(현지시간) 방문 중인 이라크에서 현지 기자가 기습적으로 던진 신발을 고개 숙여 피하고 있다. ①~③번 사진은 부시가 첫 번째 신발을 피하는 장면. ④번은 알자이디가 두 번째 신발을 던지는 모습. [바그다드 AP=연합뉴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8년 12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기자로부터 신발을 맞을 뻔한 수모를 당했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자유국가에서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신발을 던진 것 또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라 생각하고 이라크 정부가 이번 일에 과잉 대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대학 내 건물에 붙인 김모(25)씨 역시 정씨와 마찬가지로 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했다. 김씨가 대자보를 붙인 대학교 측은 “김씨가 우리 의사에 반해 불법으로 침입한 사실이 없다”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된다”며 지난달 23일 김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국가원수모독죄 부활?

JTBC '썰전' 캡처

JTBC '썰전' 캡처

신발 투척 사건을 계기로 국가원수모독죄가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한국 형법에서 국가원수모독죄란 이름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신정권 때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정권을 비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모독죄’를 제정한 적이 있지만, 민주화 이듬해인 1988년 12월 여야합의로 폐지됐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8일 페이스북에서 신발 투척 사건에 대한 관련 글을 공유하며 국가원수 모독행위로 처벌하기 위해 다른 혐의를 적용한 사법 당국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김씨 역시 법원의 유죄 선고 이후 “건조물 침입죄는 핑계일 뿐 대통령을 비판한 '죄'를 끝까지 묻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대통령 모욕에 대한 형사처벌 논란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학 강사 박모 씨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박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돼 과잉수사 비판을 받았다. 김씨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 경호에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됐다. 신발이 아닌 다른 물건이었다면 대통령 신변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이른바 ‘열린 경호’로 대통령과 국민이 소통할 수 있는 경호를 해왔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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