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문은 서울에 주택 공급을 늘리라는 그것 딱 하나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가 17일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당·정 협의의 골자를 설명한 말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당의 요청에 “주택공급은 충분하다”며 반기를 들고 있다.
민주당과 김 장관은 6·17 대책의 후속 격인 7·10 부동산대책 마련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협화음을 보였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 회의에선 김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격한 말이 오갔다. 중앙일보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은 이렇다.
▶A의원=정부 공급대책에서 서울 시내는 제외돼 있는 건가.
▶김 장관=경기권 포함 수도권 전체 공급이 서울시 수요를 포괄할 수 있다.
▶A의원=서울 시내에는 그럼 공급이 필요없다는 건가.
▶김 장관=중요한 것은 수도권 공급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은 그린벨트 해제 등 서울 시내 택지 확보를 위한 구체적 방법도 내놨다고 한다.
▶B의원=역세권 용적률 상향을 포함한 거점지역 고밀도 개발을 해야 한다.
▶김 장관=무분별한 고밀도 개발은 자칫 주변 아파트값을 치솟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B의원=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김 장관=투기지역에 그러한 방안은 어렵다.
김 장관의 ‘철벽 방어’에 민주당 의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민주당 국토위 핵심 의원은 “‘서울 시내 부지가 없다’라거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국토부 주장을 김 장관도 어느새 반복하고 있다. 국토부 관료에 포섭된 거 같다”며 “내 신조는 하나, 국토부에서 안 된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라는 거다. 그걸 계속 믿어와서 부동산이 이렇게 되지 않았나”라고 했다.
앞서 지난 9일 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모인 긴급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도 민주당 소속 한 참석자는 “자꾸 국토교통부가 딴소릴 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국토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라”
“뭐라도 만들어오라”는 당의 압박에 김 장관은 동분서주하는 모양새다. 당·정 회의를 가진 15일 김 장관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을 포함한 국방부 보유 유휴지를 택지로 전환하는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 등 150만㎡를 택지로 확보하면 2만 세대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지만, 국방부는 2018년에도 반대했다. 원내 핵심관계자는 “이번에도 국방부가 반대하면 설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를 통한 택지 마련도 당·정 회의에서 검토됐지만 당장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해제는 없을 것”이라며 버티고 있다. 박 전 시장이 사망 전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국회에서 만난 것도 당의 “그린벨트 해제” 요구에 반론을 펴기 위해서였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린벨트 해제 결정을 하면 당도 우스운 상황이 된다”고 했다.
결국 남은 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땅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당장 서울 용산역 정비창 부지를 중심상업지역으로 지정해 용적률을 최대 1500%까지 높여 기존 8000가구에서 2만 가구로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 가지 방법만으론 안 되고 다양한 방법을 모두 모아야 한다”며 “국토교통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여권에선 김 장관을 두둔하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서울 주택공급을 확대하면 국가 균형발전을 결국 해치는데 당은 여론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이는 김현미 장관일 것”이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국민 체감을 높이기 위해 충분히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건 김 장관의 지론이다. 당보다 장관 마음이 더 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효성·정진우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