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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의 '한방건강'] 頭寒足熱, 머리는 차게 배·다리는 덥게

중앙일보

입력

필자의 산방(山房) 근처에서 노니는 장끼 놈은 유달리도 털 색깔이 아름답다. 한낱 깃털 장식품으로 죽어가기에는 고귀한 생명 아닌가? 인간의 허영과 사치에 유용하기 앞서 자연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꿩이 사라지는 산천은 이미 공해의 밥이 된 사지(死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눈 온 김포 들판에 전 세계적으로 4천여 마리만 남았다는 잿빛 두루미 1백여 마리가 날아왔다는 금년 설날의 징조는 아주 좋다. 그러나 저 두루미도 약(藥)된다는 소문만 퍼지면 대량 살육당할 것이 자명하다. 인간의 탐욕 앞엔 남아날 것이 없다. 적어도 지난 20세기는 그래 왔다. 그러나 동양은 만물에 약독(藥毒) 양면성 즉 상대성이 존재함을 가르쳐 왔다. 이왕에 먹더라도 약 되는 걸 알고나 먹어야 죽은 생물에 미안한 마음이 덜하지 않겠는가?

사냥꾼이나 미식가의 눈에는 저 장끼를 보면 꿩만두, 꿩냉면이 연상되겠지만 도도한 눈빛과 힘찬 날갯짓의 양기(陽氣)로 보아 바람 풍(風)자, 풍성(風性)이 많다. 예로부터 아무리 꿩 대신 닭이라 해도 날개 달린 짐승은 체 머리 흔드는 병, 손 떠는 수전증(手顫症), 중풍(中風) 등 대체로 몸이 부자연스럽게 흔들리는 풍병에 독(毒)으로 작용한다고 경고해온 바이다.

중풍은 비대한 사람에게 그 확률이 높은 병이다.
비대하면서 더구나 화(火)까지 잘 내는 고혈압 환자의 경우에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그런데 대변이나 소변까지 불통이면 중풍에 걸릴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화열(火熱)은 아래가 막힐 때 위로 치솟는다. 그럴 때 아래만 치료하는 법은 가장 낮은 경지의 의사인 하의(下醫)나 하는 법이다. 제대로 치료하려면 하병상치(下病上治: 아래의 병은 위쪽에서 치료)의 치료법을 써야 한다.

한국의 의성(醫聖) 허준 선생님의 동의보감에는 옛날 중국의 홍수를 잘 다스린 치수(治水) 제일의 우(禹)황제 이름을 딴 처방, 우공산(禹功散)이 있다. 우공산 탕약을 마시고 꿩 혹은 닭의 깃털로 목젖을 건드려 위로 구토시켜 아래의 소변 불통을 뚫어주는 법이다.

출산 후 여성들은 소변실금(小便失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웃는다든가 기침을 하면 저절로 소변이 찔끔 나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침 등으로 상체 기운이 뚫리면 하체 역시 통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서 변비나 소변불통에 재채기를 인위적으로 유발시켜 치료하기도 한다.

설사 환자는 백회혈 뜨겁게 해서 치료

이는 경락학적으로 백회혈(百會穴)을 자극하여 아래의 기(氣)를 소통시키는 하병상치(下病上治)의 묘법인데, 과학실험에 비유하자면 가는 유리관 속의 물은 윗구멍을 손으로 막으면 그대로 있다가 손을 떼면 아래로 그 물이 쏟아지는 현상으로 증명된다.

머리 꼭대기 백회(百會)라는 윗구멍을 뚫음으로써 아래의 변비, 소변불통, 난산(難産) 등을 치료함은 한방(韓方)의 묘한 상식이다. 그래서 인체를 의외로 단순하게 관찰하는 법이나 음양관(陰陽觀)으로 판단해서 보는 법을 묘한 관찰의 지혜 즉 묘관찰지(妙觀察智)라 한다. 침(鍼)이나 따기 출혈법은 관을 뚫는 작용을 하고, 뜸으로 뜨겁게 지지는 법은 경락의 구멍을 막는 작용을 하므로 거기에도 음양법(陰陽法)이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설사 환자는 백회혈을 뜨겁게 해서 막아주고, 변비 환자는 백회혈을 강하게 손톱 지압 등으로 눌러 기(氣)를 통하게 해야 한다(백회혈을 출혈시킬 때는 전문가에 의뢰할 것). 단 머리는 여간해서 뜨겁게 하는 법이 아닌 만큼 정수리의 백회혈을 설사나 하혈 환자에게 더웁게 하는 법을 실시할 적에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한의학에는 두무냉통(頭無冷痛) 복무열통(腹無熱痛), 즉 머리는 차서 아픈 법이 없고 배는 더웁게 해서 아픈 법이 없다. 또 두한족열(頭寒足熱), 머리는 차게 배와 다리는 덥게 하라는 격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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