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화천군에 온 120만원과 손편지 2장…美뉴저지 할머니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1일 강원 화천군청 교육복지과에 낯선 우표와 영어로 주소가 적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미국 한 교민 지난 11일 화천군에 편지 보내 #이 교민 "한국을 위해 싸운 참전용사에 감사" #화천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에 쓰겠다"

국제우편으로 온 편지 속에는 한 글자씩 정성껏 쓴 편지 2장과 1000달러(한화 약 120만원) 수표 1장이 들어 있었다.

미국 뉴저지에 사는 교민이 화천군에 보낸 편지. 연합뉴스

미국 뉴저지에 사는 교민이 화천군에 보낸 편지. 연합뉴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미국 뉴저지주 교민인 할머니 A씨였다. 봉투에 A씨 이름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편지 주인은 한사코 익명으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A씨가 미국에서 강원도 마을까지 큰 돈과 정성 담은 편지를 보낸 이유는 한국을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그 고마움은 손편지 2장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는 편지에서 “얼마 전 우연히 화천군이 진행하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장학사업을 알게 됐다”다고 했다. 이어 6·25 전쟁에서 싸운 에티오피아 황실근위대 칵뉴(Kagnew) 부대원들이 현재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사실도 접했다고 적었다.

 화천은 6·25 전쟁 참전용사들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곳이며, 그 중에는 에티오피아 젊은이들도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황실근위대 소속 정예부대 칵뉴 부대원 6037명을 파병했다. 이들은 658명의 사상사(전사 122명)를 내며 화천 적근산 전투 등에서 253전 253승을 올렸다. 이중 귀환한 참전용사들은 1970년대 쿠데타로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홀대를 받았다.

 A씨는 한국에 살면서 어렵게 지낸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국을 위해 피 흘린 참전용사와 후손을 돕기 위해 화천으로 수표를 보내게 됐다고 했다.

 화천군은 A씨 뜻에 따라 1000달러를 에티오피아 현지 장학사업 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참전용사 후손들이 에티오피아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왼쪽)이 지난 2월 화천군 화천읍에 있는 6.15참전유공자회 화천군지회 사무실을 찾아 에티오피아 전통 목도리를 선물했다. 연합뉴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왼쪽)이 지난 2월 화천군 화천읍에 있는 6.15참전유공자회 화천군지회 사무실을 찾아 에티오피아 전통 목도리를 선물했다. 연합뉴스

 화천군은 정전 60주년(2013년)을 앞두고 있던 2009년부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을 위한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308여명이 장학생으로 선발돼 도움을 받았다. 또 명지대와 한림대에 유학온 에티오피아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화천군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에 장학생 중 86명이 학업을 마치고 현지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식 의사가 배출되는가 하면,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학생이 탄생하기도 했다.

 장학금은 화천지역 군부대 부사관 후원금, 평화의 댐 세계평화의 종 타종료 수입, 화천군의 장학기금 등으로 마련했다. 연간 장학금 규모는 약 1억5000여만원이다.

 화천=김방현·박진호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