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문열고 사진 찍은 택시기사···유족 "母 충격 컸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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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이 첨부한 블랙박스 영상. [유튜브 캡처]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이 첨부한 블랙박스 영상. [유튜브 캡처]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의 이 말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는 데 주요 증거가 될 수 있다. 응급환자가 탄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를 엄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5일 49만명이 동의했다. 경찰은 강력팀까지 수사에 투입해 택시기사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를 검토하고 있다.

업무방해·살인·응급의료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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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업무방해‧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이중 업무방해 혐의는 입증이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차량 블랙박스에 A씨가 응급환자 이송 업무를 방해한 상황이 찍혔기 때문이다. 당초 경찰도 A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수사했다.

살인죄 적용에 있어서 쟁점은 A씨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지연된 이송시간과 환자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다.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란 자신의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알면서도 그대로 행위를 한 경우를 말한다.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려면 A씨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사망이란 결과가 발생해도 이를 감수할 의사가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사건 당시 A씨는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급차 문을 열고 환자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윤형덕 변호사(법무법인 율성)는 “환자가 실제로 타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도 ‘책임지겠다’고 말을 한 만큼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A씨가 무심코 뱉은 말이라고 부인하더라도 사건 전후 사정을 따져 수사기관이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충격…출혈로 사망"

김씨 어머니의 진단서상 주된 사망원인은 위장관 출혈(소화기관에서 피가 나는 증상)로 기재됐다. 구급차로 이송될 당시 하혈을 했고,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김씨는 “어머니가 폐암 투병 중이긴 했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아니다”며 “병원으로 갔어야 할 급박한 때에 A씨가 이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구급차 뒷문을 열어 어머니가 뜨거운 햇볕을 받게했다. 충격이 크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오후 2시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세운 택시 기사를 처벌해 주세요'란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인원이 49만명을 넘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5일 오후 2시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세운 택시 기사를 처벌해 주세요'란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인원이 49만명을 넘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상 구조 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해당 법 조항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의 환자에 대한 구조‧이송 업무를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업무방해보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처벌이 이뤄진다.

다만 사건 당시 환자가 타고 있던 사설 구급차에 응급의료종사자가 탑승하고 있지 않아 처벌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의사 출신 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LF)는 “응급의료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사건에도 응급의료 방해 혐의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 법은 국민이 응급 상황에서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정됐다”고 설명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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