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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서 불러내는 맑고 착한 소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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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호 20면

눈물 속에 핀 꽃

눈물 속에 핀 꽃

눈물 속에 핀 꽃
장은아 지음
문이당

출판사 문이당은 한국문학의 좋았던 때를 기억하는 증인 가운데 하나다. 1997년 IMF를 전후해 한계상황에 내몰린 가장의 고독을 그린 경찰관 출신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2005년 1억원 상금 세계문학상 1회 수상작으로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기록된 김별아의 장편 『미실』. 이런 작품들이 문이당 소설이다.

오랜만에 장편소설 『눈물 속에 핀 꽃』을 시장에 내놓고 은근히 기대가 큰 눈치다. 1965년생 소설가 장은아. 앞표지 안쪽 책날개 정보를 살펴보니 작가의 첫 장편이다. 90년 미국으로 건너가 수필, 단편소설을 좀 썼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국내 작가 가운데 입심에 관한 한 빼놓기 어려운 소설가 김종광이 이런 추천사를 썼다.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체험의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펄펄 뛰는 인생. 착하고 건전하고 올바른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너무 산뜻하고 너무 뜨거운 마음들을 보라.”

사설이 길었다. 책장을 펼친다. ‘작가의 말’. 소설 내용은 모두 허구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주인공 이름이 작가의 할머니의 실명, 주인공 남편의 이름이 할아버지의 실명이라고 밝힌다.

장은아 작가의 소설 문장을 어떻게 평해야 할까.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문장들이다. ‘문학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정신과 글쓰기가 오염된 적 없는 상태로 보인다. 읽어 나가는 데 작은 걸림돌조차 없다. 영어식으로 페이저 터너(page turner)다. 글쓰기만 그런 게 아니다. 소설을 이루는 이야기의 성격, 그 밑에 깔린 작가의 세계관조차 그악스런 요즘 세태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이다.

소설은 볼품없는 외모의 열네 살 소녀 봉임이 번듯한 일본 유학파 남편 석근과 결혼해 따가운 시집살이, 모진 현대사의 굴곡을 뚫고 아쉬울 것 없는 종생(終生)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정직하게 그려 나간다.

그의 순한 행적을 따라가다 콧등이 여러 번 시큰했다. 어쩐지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시키니 ‘작은 토지’, 미국이라는 타향에서 동결 건조시킨 듯 갈등 없이 조화로운 우리 옛 정서를 불러내는 ‘달달한 토지’. 이런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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