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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노사 힘의 균형 위해 선진국처럼 대체근로 허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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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해고자를 복직시켜 주면 법인분할 반대 소송을 중단하겠다.”(현대중공업 노조)

해고자 노조 가입 땐 인사권 침해 #전임자 임금은 노조 정치화 부채질 #“기울어진 운동장 더 기울어질 판 #국회 특위 구성, 노사 숙의 거쳐야”

“적법하게 진행된 물적분할에 대해 노조가 선심 쓰듯 해고자 복직 등을 주장한 건 현안 고민 없이 기존 입장을 고집하는 것뿐이다.”(현대중공업 사용자 측)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신설하면서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했다.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신설하고, 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중공업으로 나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시설 점거를 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사측과도 충돌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사측은 투쟁을 주도한 노조 간부 등 4명을 해고하며 맞섰다. 현행법상 해고된 이는 특정 기업의 노조원이 될 수 없다.

“법 통과 땐 기업하기 더 어려워질 것”

하지만 해직자에게 노동조합 가입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해직자와 실직자의 노조 가입 허용 등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 등 노동 관련 법안 3개가 지난 23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다. 이 법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사전 포석들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노조법 개정안 등 노동 관련 3가지 법안을 둘러싼 재계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미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정부에 제출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 입법안은 크게 6가지 쟁점으로 요약된다. ①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②비조합원의 노조 임원 선임 허용 ③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허용 ④복수노조와 개별교섭 시 차별대우 금지 ⑤사업장 주요시설에 대한 점거 금지 ⑥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이다. 이 중 ①~④번은 노조에 유리한 내용이다. 반면 기업 입장을 대변한 건 ⑤, ⑥번에 불과하다.

재계는 이번 법안이 이미 노측에 기울어진 노사 관계를 더 기울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익명을 원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국의 노사관계는 경쟁국이나 주요 선진국보다 노조 측으로 이미 실질적인 힘이 크게 기울어진 상태”라며 “현재도 노조는 사용자에 대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투쟁적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객관적인 수치로도 입증된다. 경총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임금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가 한국은 연평균 43.13일이다. 반면 영국은 18.06일, 미국 5.2일, 일본 0.23일에 그친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기업하기는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법안대로라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징계 해고를 한 이를 노조원으로 다시 받아들이고, 노조가 그에 대한 복직 투쟁을 강행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정당한 인사권도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1000명당 근로손실 한국 43일 일본 0일

국제노농기구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주요 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제노농기구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주요 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기에 복수노조와 개별교섭 시 차별대우를 금지한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현재는 복수노조가 있더라도 이중 가장 대표성을 가진 노조와 협상을 통해 임단협을 하면 된다. 하지만 법안대로 통과된다면 사측은 일일이 이들 개별 노조와 임단협을 해야 한다. 복수노조가 설립된 삼성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경우에 따라선 저성과자나 징계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여러 개 생길 수 있다. 특히 여러 직군이 일하는 회사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최근 논란이 되고 인천공항공사 역시 직군별로 별도의 노조가 존재한다. ‘노-사’ 갈등은 물론 ‘노-노’ 갈등도 우려되는 이유다.

노조의 정치 세력화가 가속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현행법이 금지하고 있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노조 전임자들은 ‘투쟁’에 더 전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된다.

재계 일부에선 현재의 국회 상황과 청와대의 의지 등을 감안해 ILO 협약 비준을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법 개정안들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대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론이다.

사용자 측의 대표적인 요구안은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점거 전면 금지 등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선진국처럼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경영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폐지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 이전에 국회에 특별위원회 등을 꾸려 노사정이 함께 관련 논의를 충분히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미 관련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만큼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코로나19 등으로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노사정이 터 넣고 얘기할 수 있는 국회 특위 등이 필요하다”며 “국회에 경영계와 노동조합 등이 모두 참여하는 노동 특별위원회를 신설해 법 개정에 대한 공감대부터 끌어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수기·강기헌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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