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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광장] 독일 광우병 히스테리

중앙일보

입력

사례1: 얼마 전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오셔서 디 차이트지 발행인을 역임한 테오 조머 박사를 비롯한 독일 중견 언론인 5명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다 자연스럽게 광우병(BSE) 으로 화제가 이어졌다. 모두가 걱정만 할 뿐 뾰족한 결론이 날리 없었다. 물론 8명의 손님 중 아무도 쇠고기 메뉴를 선택한 사람이 없었다.

사례2: 며칠 전 딸 아이를 하교시키는 길에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물론 우리는 감자튀김을 시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20평쯤 되는 가게 안 손님 가운데 햄버거를 먹는 사람은 딱 한사람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감자튀김이나 도넛.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하긴 요즘 독일 TV의 맥도널드 광고엔 아예 '빅맥' 같은 햄버거는 사라지고 대신 맥치킨(닭고기버거) .도넛.아이스크림 등만 나온다.

최근 기자가 본 독일 광우병 파동의 단면들이다. 그간 영국과 프랑스의 광우병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독일 사람들이 지난달 말 독일 소도 광우병에 걸린 사실이 밝혀진 뒤 철저하게 쇠고기를 외면하고 있다.

슈퍼의 쇠고기 코너에 '아르헨티나산 쇠고기' 라고 큼지막하게 써붙여 놨지만 파리만 날린다. 잠정 통계에 따르면 광우병 발병 전에 비해 80% 가량 소비가 감소했다.

이름도 생소한 'BSE'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우해면양뇌증) 란 단어는 마치 에이즈가 그랬듯이 이제 어린이들까지 툭하면 입에 올리는 유행어가 됐다.

독일 정부는 30개월 이상된 소를 도살할 때 광우병 검사를 의무화하고, 동물사료의 무기한 판매금지를 시행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의약품의 60%에 쇠고기 성분이 사용되고 있다느니, 광우병의 인체감염 형태인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vCJD) 의 잠복기가 10년 이상까지 걸린다느니 하는 보도가 계속되면서 오히려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과거 영국산 쇠고기 수입이 자유로웠던 시절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를 한번은 먹어봤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게 불특정 다수의 고민이다.

슈피겔지 표현처럼 독일 전체가 '히스테리 공화국' 이 된 느낌이다. 여기에다 우리로 치면 된장과 고추장, 혹은 김치에 해당하는 버터.치즈.요구르트 등 유제품도 안전하지 않다는 보도가 나오는 날이면 아마 '패닉(공황) 공화국' 이 돼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광우병 발병의 유력한 원인인 동물사료를 6개월 한시적으로 금지한다는 유럽연합(EU) 의 소극적 결정은 배짱인지, 무지의 소산인지 알 수가 없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말라고 그토록 소들이 외치고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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