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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전세나 월세 살라는거냐"…내집 마련 멀어진 3040 한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17 부동산 대책의 후폭풍이 정치권에도 찾아올 조짐이다. 3040세대 사이에서 이번 부동산 대책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수도권 3040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6·17 대책으로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규제 지역으로 묶이며 주택담보 대출비율(LTV)이 40~50%로 낮아졌다. 2억~3억원 가량의 현금 없이는 수도권 아파트 구매(5월 평균가 5억3797만원, 한국감정원)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수도권 3040을 중심으로 “정부는 우리가 집 사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자조가 나온다. 18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15~17일 만 18세 이상 15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0.9%포인트 떨어진 41.4%를 기록했는데, 수도권 30~40대를 중심으로 하락폭이 컸다.

① ‘갑’과 ‘을’만 있는 이분법적 대책 

서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정부 여당의 부동산 대책을 두고 먼저 ‘이분법적’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주택 소유자와 세를 들어 사는 임차인만 겨냥했고, 집을 사고 싶은 무주택자들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21번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 집 소유자(갑)에게는 과거보다 더 높은 보유세(재산세ㆍ종합부동산세)를 메기고, 임차인(을) 보호는 강화한다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반면 ‘갑이 되고 싶은 을’들은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대출 규제로 주택 구매 여력이 오히려 감소했다.

이에 정부 정책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화제가 된 “나는 서민인가요, 투기꾼인가요”라는 글이 대표적이다. 자신을 평범한 직장에 다니며 2살 된 아이가 있는 무주택자라고 소개한 A씨는 최근 인천 서구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고 했다. 이 지역은 비규제지역으로 LTV 70%까지 가능해 A씨는 주택 구매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6·17 대책 발표 직후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며 LTV가 40%로 조정돼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주장이었다. A씨는 “서울 좋은 곳 살고 싶어도 돈 없어 밀려 왔더니 대출을 받지도 못하게 막아버렸다”며 “노력해서 돈버는 월급쟁이는 평생 전세나 월세로 살라고 하는 정책인가”라고 한탄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A씨보다 날 선 반응도 적지 않다. “자가보유자가 늘어나면 그 지역이 보수화된다”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저서『부동산은 끝났다』 구절을 인용, “개천에서 용이 아닌 가재ㆍ붕어ㆍ개구리로 계속 살라는 얘기”라는 자조적 반응도 나온다. 최근에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집 있는 사람이 갑이고 하라는대로 하며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정부 부동산 대책에) 불편한 사람이 많다. 집도 없으면서…”라고 말해 ‘서민비하’ 논란이 일기도 했다.

② 이중성에서 오는 실망감

3040이 부동산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유로 여당 인사들의 ‘내로남불’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2주택 이상 다주택자를 공천에서 배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총선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자가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거주 목적 외 주택 처분을 서약해달라”(이인영 당시 원내대표)고 한 이후 민주당은 공천 신청을 받을 때 실제로 거주하는 집을 제외한 나머지를 팔겠다는 '서약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총선이 끝난 뒤 당선된 민주당 의원의 4명 중 1명이 다주택자로 드러나며 논란이 됐다. 3주택 이상 보유 의원수도 10명(열린민주당 1명 포함)으로 통합당의 2배였다. 그러자 허윤정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당 차원의 기준에 맞추실 거라고 믿고 있지만 무리수 있는 결과가 있다면 당에서 논의할 것”이라면서도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면 1가구 1주택밖에 안 된다고 법으로 돼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에서 아직까지 후속조치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서울 구청장 25명 중 민주당 인사가 24명을 점하고 있는데, 이들 4명 중 1명도 다주택자다.

③ “더 강력 규제” 예고에 실수요자 우려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1일 오후 춘추관에서 일본수출규제 대응, 부동산 대책, 한국판 뉴딜, 추경 등 현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1일 오후 춘추관에서 일본수출규제 대응, 부동산 대책, 한국판 뉴딜, 추경 등 현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가 규제 가능성도 수도권 3040 세대를 중심으로 한 실수요자들에게는 불안 요소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1일 “모든 정책수단을 소진한 것은 아니다”며 향후 추가 규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당에서도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종합부동산세법, 소득세법, 주택법, 지방세특례제한법, 민간임대주택법 등 5개 법안을 신속하게 다시 추진하겠다”(김태년 원내대표) “더 강력하고 선제적 조치도 마다하지 않을 것”(윤관석 정책위 수석부의장)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예고한 대책이 사각지대에 놓인 3040세대의 실제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그 동안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걸 규제하며 표를 얻어왔다”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치를 위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급과 수요를 규제하면 시장이 왜곡돼 나타날 수 있다. 원룸 등 청년 주택만이 아닌 3040을 위한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을 펼쳐야 장기적으로도 시장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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