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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값 10주 만에 반등 “6억 미만 아파트 씨가 말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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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11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11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집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정부의 연이은 주택 규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떨어지던 서울 아파트값이 10주 만에 상승했다. 정부는 또다시 고강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0%대 금리에 갈 곳 없는 돈 쏠려 #대출규제 비껴간 강북 일제 상승 #상계동 73㎡ 1년새 거의 2억 올라 #대전·청주 등 비규제지역도 들썩 #규제 내성 생겨 반등 주기 짧아져 #홍남기 “가격 점검 중…조치 강구”

1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6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주 대비 0.02% 올랐다.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 금지 등을 담은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올 1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던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값도 상승 또는 보합으로 전환했다.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일대 및 비규제 지역 아파트값도 심상치 않다. 대전시 유성구(0.35%), 인천시 부평구(0.33%), 하남시(0.68%) 등의 상승세가 커졌다.

서울아파트가격대별가구수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joongang.co.kr

서울아파트가격대별가구수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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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끄는 것은 노원·강북·성북구 등 서울 강북 지역 아파트값이 일제히 올랐다는 점이다. 대출 규제가 불러온 풍선효과다. 12·16 대책으로 9억원 넘는 주택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죄자 돈은 9억 미만 아파트가 많은 강북으로 몰렸다. 요즘 서울에서 6억원 이하 아파트 매물은 씨가 말랐다는 말이 돌 정도다.

이달 3일 서울 노원구의 지은 지 30년 넘은 상계주공 3단지 전용면적 73㎡가 7억9000만원(국토부 실거래가)에 팔렸다. 1년 전만 해도 6억원 초·중반에 거래됐던 아파트다. 인근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9억원 미만 아파트는 대출이나 자금 조달 계획서 규제가 덜하다 보니 매수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직장인 이모(40)씨는 “요즘 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최대 LTV 70%)을 이용할 수 있는 6억원 미만 아파트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해 무리해서라도 살 걸 후회가 된다”고 토로했다. 고가주택과 가격 격차를 줄이는 ‘갭 메우기’로 강북의 중저가 아파트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집값 상승-정부 규제-집값 하락-다시 상승’의 흐름이 더 빨라지고 있다. 일종의 내성이 생긴 셈이다. 2018년 종합부동산세 강화, 규제 지역 내 2주택자 주택담보대출 금지 등을 담은 9·13 대책 이후 서울 집값은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해 6월 다시 오름세로 전환했다. 이어 12·16 대책이 발표돼 집값이 꺾이는 듯했지만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시장이 하락세에서 돌아서는 반등 주기만 더 빨라졌다.

규제지역도 개발 호재 있으면 올라

전문가들은 “넘치는 유동성 탓”이라고 진단한다. 0%대 금리에 갈 곳 없는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보니 자금이 다시 주택시장으로 들어온다”며 “최근에는 강남뿐 아니라 서울 전역의 아파트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간아파트가격변동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간아파트가격변동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런 심리를 규제로 찍어 누르니 옆으로 튄다. 풍선효과다. 비규제 지역의 집값이 오르고, 규제 지역 내에서도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중저가 매물의 가격이 뛰고, 개발 호재가 있으면 규제가 심해도 결국 오른다.

최근 서울 송파구 일대 집값이 들썩이는 까닭이다. 서울시가 5일 잠실 종합운동장 일대를 재개발하는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적격성 조사 완료 소식을 발표하자 개발 기대감이 커졌다.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도 착공한다. 국토부는 잠실 일대 시장이 더 과열되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을 방침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시중에 돈은 넘쳐나고, 개발 사업을 안 할 수 없고, 집값을 자극할 요인이 많다”고 말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투기적 요소뿐 아니라 불안 심리에 실수요자인 젊은층까지 뛰어들어 대전·청주 등 비규제 지역의 집값이 널뛰고 있다”며 “증권시장에 동학개미운동이 펼쳐지는 것처럼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인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자금으로 규제가 통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또다시 규제 카드를 꺼내면 일시적인 진정효과는 있지만 집값 상승세를 지속해서 누르긴 어렵다”고 봤다.

정부는 서둘러 대책 검토에 들어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최근 서울·수도권 규제 지역의 주택가격 하락세가 주춤하고, 비규제 지역의 가격 상승세도 지속 포착돼 정부는 경각심을 갖고 예의 점검 중”이라며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집값 잡을 가용수단 여러가지”

규제 지역 확대, 9억이하 아파트 대출 규제 강화 등이 추가 대책으로 거론된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며 “규제 지역을 지정할 수 있고, 대출 규제를 강화할 수 있으며, 세제나 제도상에 미비점이 있으면 보완하거나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도 움직이고 있다. 국토부의 고위 관계자는 “규제 지역 확대 등 추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포·인천·안산·대전과 같은 비규제 지역을 조정 대상 지역으로 지정하고, 용인·구리·수원 등 기존 조정 대상 지역은 투기과열지구로 격상하는 방안이다.

추가 대책이 나오면 문재인 정부 들어 21번째 대책이 된다. 올해 들어 세 번째다. ‘가격이 오르면 옥죈다’는 것이 정부의 기조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고 밝혔다.

염지현·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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