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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동안 기부금 70억 모금…루게릭병 요양센터 짓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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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승일희망재단의 박성자 사무총장이 용인시 모현읍에 들어설 국내 최초의 루게릭 환자 요양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승일희망재단의 박성자 사무총장이 용인시 모현읍에 들어설 국내 최초의 루게릭 환자 요양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여기, 200평(661㎡)건물이 올라가는 거예요. 1층은 의원이 들어서고, 나머지는 요양 시설이에요.”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 #“1원, 10원까지 회계장부 기입 #복지부 허가 얻는데만 3년 걸려 #안정적 지원해줄 기업 나서주길”

지난주 경기 용인시 모현읍의 낮은 야산자락. 풀이 무성한 빈 땅에 서서, 박성자(53)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는 마치 건물이 눈에 보이듯 설명을 했다. 1000평 규모 이 땅엔 루게릭 요양센터가 2022년 들어선다. 100명의 루게릭병(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이나 몸의 근육이 빠져나가는 난치병) 환자가 의료진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지낼 수 있는 시설이다. 박씨는 2018년 4월, 승일희망재단 명의로 이 땅을 샀다. 3년 넘게 보건복지부를 설득해, 지난달 초 요양센터를 짓도록 정관 변경을 이끌어냈다.

박씨는 2002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 환자들의 고통을 사회에 환기한, 전 현대모비스 농구코치 승일(49)씨의 큰 누나다. 17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다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을 위한 요양병원을 짓고 싶다”는 동생의 꿈을 이루려 2011년 승일희망재단을 세웠다. 루게릭 환자 돕기 캠페인에 발 벗고 나선 가수 션이 승일씨와 함께 재단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9년 만에 모인 기부금은 70억원. 기금마련 콘서트를 열두 차례나 열고, 아이스버킷챌린지 같은 이벤트를 이끌었다. 팔찌나 티셔츠 같은 물품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아직 건물을 설계하는 단계인데.
“보건복지부의 설립 허가를 얻는 데 3년이 걸렸다. 비영리재단이 건물을 지어 자산을 증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좀처럼 정관을 변경해주지 않았다. 세종시를 오가며 많이 울었다. 결국 정관이 바뀌어 센터를 짓게 됐으니 지금은 감사한 마음뿐이다.”
모금액이 상당하다.
“처음 3년 반이 정말 힘들었다. 저 혼자였고, 회사 일을 배운 적도 없었다. 공동 대표인 션이 많이 도와줬다. 지금은 실력 있는 직원들이 있어 든든하다.”
승일씨가 진단받은 이후 요양병원 건립에 진력했는데.
“처음엔 동생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주고 싶어 재단을 설립했다. 지금은 루게릭 환자와 가족들이 먼저 생각난다. 잠시도 간병인 없이 버틸 수 없는 병이다. 환자와 가족의 삶이 너무 안타깝다. 뭐라도 해서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다.”

승일희망재단 홈페이지의 재정·경영 공시엔 ‘사무실 생수 구입 2만7800원’‘신상품 개발을 위한 동대문 시장 조사 6000원’ ‘상품 포장용품 구입 5만2820원’ 등 10원 단위 지출내역까지 적혀있다. 기부자들의 기부금도 1원 단위로 기재한다.

박씨는 “커피 한 잔을 사도 수익 사업을 위해 샀는지, 기부자 관리를 위해 샀는지를 기록한다”며 “처음엔 어떻게 회계를 하는지 몰라 가계부 쓰듯이 적었다. 시간이 많이 들고 힘이 들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제 것이 아닌 돈을 관리하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 재단에 가장 필요한 도움은 뭔가.
“그동안 많은 분의 도움으로 한발 한발 왔지만, 요양센터를 안정적으로 지원해줄 기업이 나서길 소망한다. 센터 완공을 기다리는 루게릭 환우나 가족을 생각하면 갈 길이 너무 멀다. 센터의 이름부터, 지금까지 재단이 한 모든 일의 공을 후원 기업에 드릴 수 있다.”

지난해 박성자씨의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 소식을 승일씨에게 전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승일이가 아프고 나서 신앙을 가지게 됐다. 서른 두살에 병에 걸리고 나서 동생은 줄곧 누워지낸다. 이다음에 천국이 있다고 믿지 않고서는, 동생이 너무 가엾지 않나. 아버지의 일도 그렇게 전했다. ‘승일아, 우리는 어차피 모두 천국에서 만나는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재단 일도 신앙에 기대어 하고 있다. 모든 것을 그분이 지켜보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허투루 할 수가 없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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