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상·알콜중독 노숙자 급증

중앙일보

입력

최근 경기침체로 노숙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정신이상.알콜중독 등을 앓는 노숙자들에 대한 격리.치료가 되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자살 등 사고가 잇따라 정상적인 노숙자들이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영등포구 노숙자수용시설인 ´서울 자유의 집´ 입소자 3천1백33명을 조사한 결과 3백26명(10.4%) 이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또 전국노숙자대책 종교시민협의회가 지난 3~4월 전국 노숙자 쉼터 1백7곳에서 거주하는 노숙자 4천3백74명의 질병 상태를 조사한 결과 7.2%가 알콜중독자였다.

그러나 임시 보호시설의 치료 여건은 열악한 상태다. 비교적 의료여건이 양호한 서울 자유의 집에도 주간에 내과전문의 한명과 간호사 두명이 환자를 돌볼 뿐, 정신과 전문의는 없다.

서울 자유의 집에 입소한 朴모(36) 씨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참담한 심정" 이라며 "이 때문에 자활 의지가 꺾여 이 시설을 떠난 사람이 많다" 고 말했다.

자유의 집 배성수 생활지도팀장은 "정신이상자들이 한밤중에 안자고 돌아다니거나 옆 동료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례가 많다" 면서 "이들과 같이 지내는 입소자들로부터 방을 교체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고 밝혔다.

중증 판정을 받은 환자들은 정신병원에 수용이 가능하지만 그외 질환자가 발작을 하거나 사고를 낼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지난 8월 말 정신분열증을 앓던 鄭모씨가 자유의 집 숙소 4층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다. 鄭씨는 지난 6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지난해 10월에는 환청에 시달리던 崔모(42) 씨가 스스로 혀를 잘라 입소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지난 1월부터 자유의 집에서 노숙자들을 돌봐온 인의협은 "서울시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 는 이유로 내년부터 활동을 중단키로 결정한 상태다.

서울시 노숙자대책반 관계자는 "심각한 특수질환자들은 정신병원에 입소해 정상 치료를 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며 "경미한 환자들을 위해 별도 시설을 만들 필요는 없다" 고 말했다.

하지만 한림대 주영수(周永洙.인의협 의료사업국장) 교수는 "정신병원 입소를 거부하거나 입원할 만큼의 증세가 아닌 특수질환자들도 격리 치료해야 사회 복귀가 가능하다" 며 우려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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