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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해용의 시시각각

코로나보다 더 두려운 청년 백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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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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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서울 염곡동 KOTRA 사이버무역상담장. 정장에 마스크를 쓴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해외 취업 박람회인 ‘글로벌 일자리 대전’을 통해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다. 코로나19 확산과 입국 제한 등을 이유로 원격 화상통화 방식으로 진행한 면접에서 취업 희망자들은 바다 건너 면접관들에게 지원 동기와 포부를 밝혔다. 면접을 치른 기업은 일본계가 50개로 80%를 차지한다. 한국과 달리 일자리가 넘쳐나고, 스펙·전공 등을 덜 따진다는 게 일본을 선택한 이유들이다. 한 청년은 “코로나19 확산이나 반일·혐한 감정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해마다 늘어나는 해외 취업, 특히 일본행을 택하는 청년이 증가한다는 사실에 두 가지가 안타까웠다. 하나는 소중한 인적 자산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KOTRA 관계자는 “한국 청년은 성실하고 적극적인 데다 조직 융화력이 좋아 일본 기업이 선호한다”고 전했다. 우리가 애써 키운 이런 인재를 일본에 넘겨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청년들의 취업에 대한 절박함이다. 일본은 코로나19 사망자가 우리의 3.4배가 넘을 정도로 감염 위험이 높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일자리를 찾기 힘드니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이들을 활용하면 좋겠지만 여력이 없다. 청년 고용 사정은 팍팍해진 지 오래다. 특히 코로나19는 이를 외환위기급으로 악화시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20대 취업자 수는 1년 새 15만8000명 줄었다. 4월 기준으로는 카드 사태 때인 2003년 4월(-18만 명) 이후 가장 많다. 고용률은 54.6%로 1년 새 2.6%포인트 낮아졌는데, 모든 연령대 중 낙폭이 가장 크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58.4%), 외환위기 때인 1998년(57.4%)보다도 낮다. 이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분기 이후 청년층 고용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나빠진 20대 고용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외환위기 때보다도 나빠진 20대 고용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렇다 보니 신입 구직자의 57.7%는 ‘비정규직’이라도 취업을 원한다(사람인 조사). 지난해 조사에 비해 5.9%포인트 올랐다. 이유는 ‘당장 취업이 급해서’(51.2%, 복수응답)가 1위였다. 희망 연봉은 평균 2669만원으로 올해 초보다 260만원 줄었다. ‘코로나로 죽나, 카드빚으로 죽나 똑같다’며 감염 위험이 높은 접객 업무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다치 않는 젊은이도 많다.

이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경고다. 취업을 못하니 결혼을 못하고, 결혼을 못하니 출산을 못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고, 신용불량자 양산에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막대한 시간과 재원을 투자해 대학·대학원을 마친 고학력 인재들이 실업자를 전전하는 건 국가적 손실이다.

청년 구직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다만 해법은 자명하다. 지금처럼 혈세를 투입해 만든 단기 알바형 일자리 따위가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이런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기업이 많아지고 성장하면 더 많은 청년을 뽑아 쓰게 된다. 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도록 불합리한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입이 아프도록 주문하지만 헛수고다.

역대 정부는 물론 지금 정부·여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다만 반(反)기업·친(親)노동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일부 정치인과 노조·시민단체의 거친 목소리에 실행을 주저할 뿐이다.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다는 ‘수퍼 여당’이 탄생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비행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일자리 정책의 대전환에 나선다면 최악으로 치닫는 청년 고용 문제를 타개할 수 있다.

손해용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