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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핑계로 홍콩, '천안문 추모집회' 금지…8명씩 촛불 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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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 몰려든 시위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1989년 5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 몰려든 시위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에서 30년을 이어온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추모 촛불 집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6.4 촛불 집회는 1989년 6월 4일 새벽 중국 정부가 탱크 등 병력을 동원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과 시민을 유혈 진압한 사태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31주년 맞은 중국 ‘천안문 사태’ #홍콩에서 매년 추모 촛불 집회 #코로나 구실로 8인 초과 모임 금지 #시민단체, 8인씩 그룹 지어 강행 #"홍콩 보안법에 마지막 집회" 탄식도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선 매년 6월 4일을 전후해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아무런 기념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홍콩에선 1990년부터 빅토리아 공원에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모여 추모 행사를 펼쳤다.

1989년 중국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 ‘6.4 천안문 사태’를 상징하는 사진. 천안문 광장에서 이동하는 탱크 부대를 중국의 한 남성이 용기 있게 가로막고 있다. 이 남성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됐는지는 31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후 사진엔 ‘탱크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이터=연합뉴스]

1989년 중국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 ‘6.4 천안문 사태’를 상징하는 사진. 천안문 광장에서 이동하는 탱크 부대를 중국의 한 남성이 용기 있게 가로막고 있다. 이 남성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됐는지는 31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후 사진엔 ‘탱크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천안문 사태 발생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엔 무려 18만 명의 홍콩인이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열기는 닷새 후인 6월 9일 100만 홍콩인이 거리로 뛰쳐나와 홍콩 정부가 범죄인의 중국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송환법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이 같은 빅토리아 공원에서의 대규모 추모 촛불 집회를 볼 수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홍콩 정부가 지난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한다며 8인을 초과하는 모임을 불허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1989년 6월 4일 아침의 천안문 광장 모습. 이날 새벽 중국 당국은 탱크와 장갑차 등 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어지러이 널린 군용 차량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게 불과 몇 시간 전 군과 시위대 간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걸 말해준다. [AFP=연합뉴스]

1989년 6월 4일 아침의 천안문 광장 모습. 이날 새벽 중국 당국은 탱크와 장갑차 등 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어지러이 널린 군용 차량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게 불과 몇 시간 전 군과 시위대 간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걸 말해준다. [AFP=연합뉴스]

코로나를 핑계로 내세웠지만 촛불 집회를 계기로 지난달 28일 통과된 ‘홍콩 보안법’ 등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정부는 8인 초과 모임 금지를 오는 18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혀 ‘반송환법’ 시위 1주년 행사도 원천 봉쇄할 예정이다.

홍콩 당국은 오늘 3000여 명의 폭동진압 경찰을 투입해 집회 참가자를 단속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위반을 따져 단순 참가자에겐 2000홍콩달러(약 31만원)의 벌금을, 집회 주도자는 벌금 2만 5000홍콩달러 또는 최장 6개월의 징역에 처한다고 한다.

6.4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4일 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는 역대 최다인 18만 명의 시민이 모여 추모 촛불집회를 가졌다. [로이터=연합뉴스]

6.4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4일 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는 역대 최다인 18만 명의 시민이 모여 추모 촛불집회를 가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일 트위터에 “시작된다. 어느 사이에. 30년 만에 처음으로 홍콩 정부가 천안문 사태 추모 집회를 불허했다”는 개탄의 글을 올렸다. ‘홍콩 보안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홍콩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홍콩 네티즌 사이에서도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 6.4 촛불 집회 허가를 못 받을 가능성이 크고 설사 받는다 해도 “6·4 사태 재평가”, “학살 책임을 추궁하라”, “공산당 일당 독재를 끝내라”, “민주인사를 석방하라” 등과 같은 구호를 외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지난해 6월 4일 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집회에서 홍콩 시민들이 ‘6.4 사태를 재평가하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 앞에서 촛불을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6월 4일 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집회에서 홍콩 시민들이 ‘6.4 사태를 재평가하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 앞에서 촛불을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촛불 집회는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6·4 사태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상징이 돼 왔다. 한데 ‘홍콩 보안법’을 시행하기도 전에 벌써 집회를 막는 홍콩 정부의 조치를 볼 때 앞으로 홍콩에서의 6·4 사태 추모 집회는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990년부터 촛불 집회를 주도해온 홍콩 지련회(支聯會)는 이날 홍콩 정부의 집회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집회 참가자가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물이 흐르듯이 이동하며 참여하는 유수식(流水式) 집회를 펼칠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홍콩 시민들이 3일 밤 홍콩 거리 곳곳에서 촛불집회를 가지며 6.4 사태 발생 31주년을 미리 기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3일 밤 홍콩 거리 곳곳에서 촛불집회를 가지며 6.4 사태 발생 31주년을 미리 기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빅토리아 공원을 향해 8명씩 그룹을 지어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홍콩 거리 100여 곳에서 10만 개의 촛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행사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다.

오후 6시 30분(한국시간 7시 30분)엔 빅토리아 공원 분수대 옆에서 첫 촛불을 밝히고 밤 8시 9분에는 1989년 6월 4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일제히 1분간의 묵념을 올린다. 홍콩 정부의 불허에도 수만 명의 시민이 참여할 것으로 보여 충돌 우려가 나온다.

홍콩 시민들이 3일 밤 ’죽지만 않는다면 퇴장은 없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6.4 사태 발생 31주년을 미리 기념하고 있다. 플래카드 앞 여성은 촛불 대신 휴대폰을 들어 추모의 뜻을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3일 밤 ’죽지만 않는다면 퇴장은 없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6.4 사태 발생 31주년을 미리 기념하고 있다. 플래카드 앞 여성은 촛불 대신 휴대폰을 들어 추모의 뜻을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홍콩 당국의 집회 불허 방침에 맞서 글로벌 차원의 온라인 추모집회도 연다. 지련회 리줘런(李卓人) 주석은 “올해 온라인 집회 주제는 진실, 삶, 자유, 저항”이라며 ‘#6431Truth’ 해시태그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올해가 6·4 사태 31주년임을 말하는 것이다.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 학생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왕단(王丹)도 “인터넷을 통해 추모에 참여하자”고 말하고 있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올해는 온라인 촛불 집회가 미국과 유럽 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한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4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는 ‘민족의 영웅이여, 영원하라’와 같은 글귀가 적힌 꽃들이 놓였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한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4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는 ‘민족의 영웅이여, 영원하라’와 같은 글귀가 적힌 꽃들이 놓였다. [로이터=연합뉴스]

6·4 사태의 주역 천펑숴(陳鋒鎖)는 “올해는 유례없이 많은 중국의 젊은 학생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천안문 사태에 관심을 보인다”며 이는 코로나 사태를 폭로한 리원량(李文亮)의 사망이 중국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천안문 사태의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천안문 어머니회’의 대변인 여우웨이제(尤維潔)는 “올해는 코로나 영향으로 베이징 완안(萬安) 공공묘지에서 단체 추모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4일 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4일 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족들은 중국 당국에 천안문 사태의 ‘진상 조사와 배상, 책임자 처벌’ 등 3대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지금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어떠한 참회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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